스페인 북부의 한가운데, 에브로 강을 따라 자리 잡은 사라고사는 여행자에게 독특한 감정을 안겨주는 도시다.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공기는 분명 마드리드의 바쁜 기운도, 바르셀로나의 화려함도 없었다. 대신 오래된 성벽의 그림자와 강가를 스치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느린 리듬이 있었다. 그 리듬 속에서 나는 내 걸음을 자연스레 늦췄다. 그날 오후의 햇살은 금빛이었고, 도시의 표면에는 세월의 결이 조용히 깃들어 있었다.에브로 강과 바실리카, 도시의 심장사라고사의 중심은 단연 에브로 강이다. 이 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 중에서도, ‘푸엔테 데 피에드라’에서 바라본 풍경은 잊기 힘들다. 강 건너로는 거대한 ‘바실리카 델 필라르(Basilica del Pilar)’가 우뚝 서 있다. 그 돔 지붕 위의 타일들은 햇빛을..
프랑스 남부의 햇살은 유난히 따뜻하다. 그중에서도 몽펠리에는 그 빛을 가장 아름답게 품은 도시였다. 파리의 세련됨이나 니스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매력. 이곳은 조금 더 인간적이고, 조금 더 솔직한 도시였다. 여행을 시작한 첫날, 역 앞 광장에서 부는 바람 속에는 커피와 바게트,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 도시가 마음에 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코메디 광장, 도시의 심장 속을 거닐다몽펠리에의 중심은 단연 ‘코메디 광장(Place de la Comédie)’이다. 이름부터가 흥미롭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이름보다 분위기에 있다. 원형으로 펼쳐진 넓은 광장 한가운데에는 분수가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싼 건물들은 모두 고풍스럽다. 오래된 석조 건물 위로 햇살이 부드럽게 쏟..
리보르노(Livorno)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처음부터 넣어둔 도시는 아니었다. 피사와 피렌체 사이를 오가던 중 우연히 지도를 보다가, 바다를 끼고 있는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리보르노. 그 이름이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기로 했다. 여행 중 가장 좋은 순간은 언제나 ‘계획에 없던 길’에서 찾아온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리보르노 항구, 바람 속에서 시작된 하루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짭조름한 바닷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바람은 상쾌했다. 리보르노는 항구도시답게 바다의 기운이 도시 전체에 스며 있었다. 오래된 창고와 선착장, 그리고 작은 어선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은 다른 이탈리아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투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관광객이 몰려드는 ..
뒤셀도르프는 독일에서 내가 가장 늦게 찾은 도시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라인강 근처의 세련된 도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발을 들이니, 이곳은 단순히 화려하거나 현대적인 곳이 아니었다. 밤하늘 아래 빛나는 라인강, 느릿한 사람들의 걸음, 그리고 예술이 일상처럼 녹아든 거리. 그 모든 게 차분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라인강변의 밤, 도시의 호흡을 따라 걷다뒤셀도르프 여행의 시작은 라인강이었다. 해질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강변으로 향했다. 바람은 서늘했고, 물 위에는 금빛 반사가 일렁였다. 사람들은 잔디밭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며 강 옆 길을 달렸다. 어느 도시나 해질녘은 아름답지만, 뒤셀도르프의 저녁은 조금 달랐다. 도시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