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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나는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에서도 가장 차분하고 깊은 정서를 가진 도시다. 발사믹 식초의 고향이자 파바로티의 도시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이 도시를 걷다 보면 그 어떤 타이틀보다 ‘조용한 여정의 도시’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성당의 고요함, 골목의 따뜻한 생활감, 그리고 미식과 예술이 더하는 도시의 층위는 여행자의 감정을 단단하게 채운다. 아래의 세 가지 축—성당·거리·예술—을 따라가면 모데나가 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되는지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모데나

1. 모데나 성당에서 시작되는 감정의 정리 — 도시의 영혼을 마주하는 순간

모데나 여행의 첫 시작은 언제나 성당 앞 광장에서 조용하게 열리는 듯하다. 모데나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동시에, 도시의 정서 전체를 한 문장으로 압축해놓은 듯한 공간이다. 화려한 조각과 섬세한 기둥 장식이 분명 눈에 보이지만, 그것들이 시선을 강제로 붙잡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체가 한 호흡으로 완성되며 여행자의 마음을 천천히 풀어준다. 성당 앞에 서면 누구든 한 번쯤 깊은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한층 더 차분해진다. 은은한 조명,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 약하게 울리는 내부의 잔향—all of these—가 마음의 속도를 낮춘다. 여행 중 성당을 방문할 때 종종 ‘구경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모데나에서는 그 감각이 사라진다. 이 공간은 바라보는 곳이 아니라 ‘머무르는 곳’처럼 느껴진다. 벤치에 잠깐 앉아 있으면 조용함 속에서 내 생각들이 정리되고, 그동안 밀어둔 감정들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성당 뒤 회랑으로 이어지는 길은 더욱 특별하다. 오래된 회랑의 기둥 사이로 비치는 빛, 작은 정원 위로 드리운 부드러운 그림자, 그리고 바람이 스칠 때 나는 아주 작은 소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풍경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성당의 구조가 굉장히 단단한데, 그 단단함 안에서 오히려 부드러움이 나온다. 모데나는 그 미묘한 감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다.

아마도 모데나 성당이 주는 특별함은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이 도시가 가진 리듬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해준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화려하지 않고, 크게 주장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다가와 감정을 붙잡는다. 여행의 첫 장면을 성당에서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데나에서는 성당이 여행자의 속도를 조절하고, 도시가 가진 깊이로 이끌어주는 안내자 같은 역할을 한다.

2. 모데나의 골목 — 일상의 온기와 여행자의 감정이 천천히 섞이는 길

모데나의 골목은 ‘일상과 여행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공간이다. 아침에 거리를 걸으면 노란빛 햇살이 건물 외벽을 따라 부드럽게 내려오고, 회랑 아래로 이어진 그림자 선들이 도시의 리듬을 만든다. 여기서는 놀랍게도 관광객의 발걸음보다 현지인의 발걸음이 훨씬 많다. 그래서 이 도시의 골목에서는 늘 실제 삶의 온도가 느껴진다. 아이들을 데리고 유치원으로 향하는 부모, 작은 카페 앞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손수레를 끌며 시장으로 향하는 어르신들의 모습까지—all of these—가 도시를 살아 있게 한다.

골목마다 이어지는 회랑 구조는 모데나만의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회랑 사이로 비치는 빛이 시간에 따라 색을 바꾸고, 돌바닥에 찍히는 그림자는 여행자의 시선을 기분 좋게 붙잡는다. 모데나는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처럼 ‘사진을 위한 화려한 장면’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창문 프레임에 남은 색의 결, 계단 모서리의 닳은 곡선, 문고리의 시간—all of these—같은 아주 작은 디테일에서 도시의 삶을 느끼게 한다.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이유 없이 발걸음이 멈춘다. 작은 치즈 가게의 짙은 향이 문틈에서 퍼져 나오는 순간이라든지, 오래된 서점 안에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잔잔히 새어나오는 순간, 혹은 골목 끝에서 클래식 음악 연습 소리가 들릴 때. 이런 순간이 모데나 여행의 진짜 핵심이다. 큰 명소보다 작은 순간들에서 도시의 감정이 완성된다.

프라토 광장에서 잠시 앉아 있다 보면 모데나의 ‘따뜻하면서도 조용한 리듬’이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 비둘기 날개가 스치는 소리, 아이들 웃음소리—all of these—가 도시의 낮을 완성한다. 이때 여행자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모데나에서는 목적지가 아니라, 걷는 과정 자체가 여행의 중심이구나.” 이 도시의 골목은 여행자에게 시간을 맞추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걸으며 감정을 느끼라고 조용히 권한다.

3. 미식과 예술로 완성되는 모데나의 깊이 — 발사믹의 시간, 파바로티의 숨결

모데나의 마지막 층위를 완성하는 것은 미식과 예술이다. 이 도시는 단순히 ‘맛있는 도시’가 아니라, 맛과 예술을 통해 도시의 영혼을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발사믹 식초의 깊이는 이 도시를 상징하는 감정적 언어에 가깝다. 장인의 발사믹 작업장을 방문하면 나무통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향이 공간을 채우고, 수십 년 동안 숙성된 액체가 가진 색과 질감이 어떤 말보다 강한 감정을 전한다. 작은 스푼 끝에 떨어진 한 방울만 맛봐도 그 모든 시간이 입안에 펼쳐지는 느낌이 든다.

모데나 음식의 깊이는 단순히 맛 때문만이 아니다. 장인들이 걸어온 시간, 가족들이 이어온 기술, 자연스럽게 유지된 전통—all of these—가 이 도시의 음식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파마산 치즈, 프로슈토, 신선한 파스타까지 모데나의 식탁 위에는 이 도시의 오랜 문화와 마음이 담겨 있다. 그 음식들을 맛보는 순간 여행자는 도시의 생생한 삶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술 또한 모데나의 중요한 축이다. 파바로티의 고향인 만큼 이 도시에서는 음악적 감성이 공기처럼 흐른다. 저녁 무렵 오페라하우스 근처를 걸으면 연습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나 악기 소리가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미술관과 작은 전시 공간에서도 이 도시만의 따뜻한 감성이 담긴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도시의 차분한 리듬을 그대로 담아낸다.

이렇게 성당에서 시작된 고요함, 골목에서 만난 일상의 온기, 그리고 미식과 예술이 더해준 깊이까지 모두 이어지고 나면 모데나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한 번 다녀간 도시”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오래 천천히 남아 있는 도시”가 된다. 이것이 모데나 여행의 진짜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