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브레멘은 내가 처음 ‘조용한 유럽’을 느꼈던 도시였다. 베를린이나 뮌헨처럼 화려하지도, 함부르크처럼 바쁘지도 않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 공기부터 달랐다. 새벽의 차가운 안개 사이로 종소리가 퍼지고,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오랜 세월의 숨결이 느껴졌다. 브레멘은 사람보다는 ‘시간’이 사는 곳 같았다. 도시 전체가 잠시 멈춰 있는 듯한, 묘한 평화가 있었다.슈노어 지구, 동화 속 골목을 걷다슈노어(Schnoor) 지구를 처음 걸었을 때, 마치 오래된 그림책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손바닥만 한 골목 사이에 붙어 있는 아기자기한 집들, 각기 다른 색의 창문틀, 그리고 벽에 걸린 손수 만든 표지판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이른 아침엔, 오히려 주민들의 일상이 그대로 보였다. 작은 빵집 앞에서 노부부가 이야..

함부르크는 독일이라는 나라 안에서도 조금은 특별한 공기를 품고 있는 도시다. 베를린이 정치의 중심이라면, 함부르크는 자유와 예술, 그리고 물의 도시였다. 북해와 연결된 거대한 항구, 운하가 얽힌 거리, 그리고 비가 잦은 회색 하늘. 처음 함부르크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흐릿한 하늘이 오히려 이 도시의 매력이라고 느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사람들의 걸음은 느긋했고, 바람은 소금기 섞인 향을 품고 있었다.운하 위를 걷는 아침, 물과 빛의 도시여행의 첫날 아침, 나는 ‘스파이허슈타트(Speicherstadt)’로 향했다. 붉은 벽돌 건물이 줄지어 선 이 창고지구는 함부르크의 상징이다. 19세기 무역의 중심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카페와 박물관, 디자이너 숍으로 변해 있었다. 좁은 다리를 건너며 물 위를 바라봤..

이탈리아 북부의 아침은 공기가 다르다. 조금 더 차갑고, 조금 더 정제된 느낌이 있다. 피에몬테주의 중심 도시, 토리노(Torino)는 그런 공기를 품고 있는 도시였다. 밀라노의 화려함도, 로마의 고대스러움도 아니었다. 그 대신 도시를 감싸는 것은 고요한 품격과 여유였다. 첫발을 내디딘 순간, ‘이곳은 서두르지 않는 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리노는 처음부터 그렇게, 나를 천천히 맞이했다.광장과 아케이드, 걷는 순간이 여행이 되는 도시토리노의 중심, ‘피아차 카스텔로(Piazza Castello)’는 도시의 심장 같은 곳이었다. 사방으로 뻗은 아케이드를 따라 걷는 사람들, 커피 향이 새어 나오는 카페, 그리고 정장을 차려입은 토리노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럽의 다른 도시보다 더 단정하고 ..

토스카나의 아침은 늘 부드럽다. 햇살은 짙지 않고, 바람은 살짝 포도밭을 스치며 지나간다. 피렌체에서 버스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 그 끝에 산지미냐노(San Gimignano)가 있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중세의 성벽 도시, ‘탑의 도시’라 불리는 그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돌길 위로 내리쬐는 햇살이 따뜻했고, 멀리서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왔다. 도시의 첫인상은 조용하지만 강렬했다. 오래된 돌담 사이로 스며드는 역사와, 그 속에 살아 있는 오늘의 냄새가 있었다.산지미냐노돌계단을 오르며, 천 년의 시간 속으로성문을 지나 언덕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발 아래로는 울퉁불퉁한 돌길이 이어지고, 양옆으로는 아담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가죽 가게, 와인샵, 그리고 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