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라카와고에 도착한 건 눈이 세상을 덮은 한겨울 아침이었어요. 버스 창문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마치 그림책 속 장면 같았습니다. 산 사이로 고요히 자리한 마을, 지붕마다 하얀 눈이 두텁게 쌓여 있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정말 따뜻해 보였죠. 손끝은 차가웠지만, 마음만은 이상하리만큼 포근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 있을까 싶었어요.하얀 지붕 아래의 삶, 그리고 숨결시라카와고의 첫인상은 ‘고요함’이었어요. 사람의 발자국 소리마저 눈 속에 묻히는 듯 조용했죠. 전통 가옥인 갓쇼즈쿠리는 두 손을 합장한 듯한 지붕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 경사가 눈을 흘려보내기 위한 지혜라고 하더군요. 단순히 옛집이 아니라, 눈이 많은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오랜 생활 방식이 그대로 남..

아카시는 오사카와 고베 사이, 바다와 도시의 경계에 살짝 걸쳐 있는 조용한 항구도시예요. 처음엔 단순히 “고베 근처의 소도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발을 디뎌보니 이곳은 훨씬 더 다정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관광명소로서의 화려함보다는, 일상의 여백을 느끼게 해주는 도시. 그래서일까요, 아카시를 떠올리면 언제나 ‘쉼표’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바다와 다리가 만든 도시의 풍경아카시를 대표하는 건 단연 아카시해협대교입니다. 고베와 아와지섬을 잇는 이 거대한 다리는, 밤이면 별처럼 빛나는 조명으로 바다 위를 수놓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순간은 낮이었어요. 맑은 날, 다리 아래로 투명하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걷던 그 시간. 파도가 잔잔하게 부서지고, 해변의 돌 위에는 갈매기들..

처음 리오마조레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다 위로 기울어진 오렌지빛이었어요. 저녁 해가 천천히 내려앉으며 마을의 집들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바람은 염분 섞인 냄새를 실어 나르고 있었죠.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들려오는 파도소리, 그리고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이탈리아어의 리듬. 그 순간,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담긴 마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색으로 살아 숨 쉬는 마을리오마조레는 친퀘테레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이에요. 언덕 위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서로 기대듯 경사진 골목을 따라 이어져 있죠. 처음 골목을 걸을 때, 마치 동화 속 미니어처 마을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건물 하나하나가 노랑, 분홍, 주황, 초록으로 칠해져 있고, 창문마다..

리오 데 자네이로는 나에게 ‘음악처럼 흘러가는 도시’였다.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껴졌던 건 공기 속의 리듬이었다. 브라질의 열기라는 게 단순히 기온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사람들의 웃음, 거리의 색, 바람의 흐름까지 모든 게 살아 움직였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악보 같았다. 그리고 그 악보 위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춤추고 있었다.코파카바나 해변, 리오의 심장리오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코파카바나 해변(Copacabana Beach)을 찾았다. 해가 뜨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은 해변을 따라 달리고 있었고, 파도소리와 함께 도시가 천천히 깨어났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으면 바람이 발끝을 간질였고,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남미의 태양은 강렬했지만, 리오의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