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의 조용한 강가를 따라 걷다 보면, 문득 돌로 쌓은 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 그대로 ‘이시바시(石橋)’라 불리는 이 마을은, 돌다리로 유명한 작은 동네다. 처음 이곳을 찾은 건 봄이 막 시작되던 날이었다. 구마모토성의 화려함에 잠시 눈이 머물렀던 나는, 사람들로 붐비는 중심가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차를 몰고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와 만난 게 바로 이 마을이었다. 첫인상은 단순했다. 평범한 시골 마을 같았지만, 그 아래로 흐르는 강과 그 위를 건너는 아치형 돌다리들이 어딘가 낡고, 또 따뜻했다.돌다리 위에서 만난 느린 시간이시바시의 돌다리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마을의 기억이 담긴 상징이다.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만든 다리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듯 단단했다. 하지만 가까..
시라카와고에 도착한 건 눈이 세상을 덮은 한겨울 아침이었어요. 버스 창문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마치 그림책 속 장면 같았습니다. 산 사이로 고요히 자리한 마을, 지붕마다 하얀 눈이 두텁게 쌓여 있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정말 따뜻해 보였죠. 손끝은 차가웠지만, 마음만은 이상하리만큼 포근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 있을까 싶었어요.하얀 지붕 아래의 삶, 그리고 숨결시라카와고의 첫인상은 ‘고요함’이었어요. 사람의 발자국 소리마저 눈 속에 묻히는 듯 조용했죠. 전통 가옥인 갓쇼즈쿠리는 두 손을 합장한 듯한 지붕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 경사가 눈을 흘려보내기 위한 지혜라고 하더군요. 단순히 옛집이 아니라, 눈이 많은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오랜 생활 방식이 그대로 남..
아카시는 오사카와 고베 사이, 바다와 도시의 경계에 살짝 걸쳐 있는 조용한 항구도시예요. 처음엔 단순히 “고베 근처의 소도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발을 디뎌보니 이곳은 훨씬 더 다정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관광명소로서의 화려함보다는, 일상의 여백을 느끼게 해주는 도시. 그래서일까요, 아카시를 떠올리면 언제나 ‘쉼표’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바다와 다리가 만든 도시의 풍경아카시를 대표하는 건 단연 아카시해협대교입니다. 고베와 아와지섬을 잇는 이 거대한 다리는, 밤이면 별처럼 빛나는 조명으로 바다 위를 수놓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순간은 낮이었어요. 맑은 날, 다리 아래로 투명하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걷던 그 시간. 파도가 잔잔하게 부서지고, 해변의 돌 위에는 갈매기들..
처음 리오마조레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다 위로 기울어진 오렌지빛이었어요. 저녁 해가 천천히 내려앉으며 마을의 집들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바람은 염분 섞인 냄새를 실어 나르고 있었죠.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들려오는 파도소리, 그리고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이탈리아어의 리듬. 그 순간,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담긴 마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색으로 살아 숨 쉬는 마을리오마조레는 친퀘테레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이에요. 언덕 위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서로 기대듯 경사진 골목을 따라 이어져 있죠. 처음 골목을 걸을 때, 마치 동화 속 미니어처 마을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건물 하나하나가 노랑, 분홍, 주황, 초록으로 칠해져 있고, 창문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