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가사키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저는 그저 규슈의 한 도시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후쿠오카처럼 대도시도 아니고, 벳푸처럼 온천이 유명한 곳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발걸음을 옮겨보니, 이곳은 제가 알고 있던 일본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품고 있었습니다. 나가사키를 걷다 보면 '고즈넉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그것은 단순히 조용해서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시간의 결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후쿠오카가 활기찬 젊음의 에너지라면, 나가사키는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의 목소리에 가깝습니다.
항구 도시 나가사키, 바다와 언덕이 만든 풍경
제가 처음 마주한 나가사키의 인상은 ‘바다’였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항구와, 그 뒤로 겹겹이 이어지는 언덕들은 마치 남유럽의 작은 마을을 보는 듯했습니다. 후쿠오카의 하카타항이 크고 현대적인 느낌이라면, 나가사키의 항구는 훨씬 아담하고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두에 서서 바람을 맞고 있으면, 이곳이 일본인지, 아니면 오래전 외국인들이 드나들던 항구도시인지 순간적으로 헷갈릴 정도였죠. 나가사키는 지형 자체가 독특합니다. 바다를 마주한 항구와 가파른 언덕길이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어, 걷다 보면 숨이 차오르면서도 그 끝에 보이는 풍경이 보상처럼 다가옵니다. 좁은 골목길마다 작은 교회와 오래된 건물이 숨어 있어, 어느 순간엔가 '이곳은 일본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도시'라는 착각을 하게 되더군요. 후쿠오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이국적인 정서가, 나가사키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나가사키의 고즈넉함, 역사와 상처 속에서 피어난 시간
나가사키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역사’입니다.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을 찾았을 때, 그 고즈넉함의 근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관광객이 있었지만, 모두가 목소리를 낮추고 전시물을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그곳에 서 있으면 ‘도시의 조용함’이 단순한 풍경의 결과가 아니라, 사람들이 기억을 간직하는 방식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후쿠오카가 활발하게 미래로 나아가는 도시라면, 나가사키는 과거의 기억을 품고 현재를 살아가는 도시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평화공원에 있는 거대한 평화기념상 앞에 섰을 때, 그 차분한 분위기와 함께 묵직한 울림이 제 마음을 덮쳤습니다. 나가사키의 고즈넉함은 결국 이런 기억에서 비롯된 것 같았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소리치지 않아도, 도시가 지닌 역사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던 거죠.
후쿠오카와 다른 매력, 나가사키의 일상 속 여유
여행의 마지막 날, 저는 일부러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나가사키 시내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언덕길을 오르다 만난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봤는데, 그 순간이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후쿠오카에서는 늘 빠른 속도감 속에서 이동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를 지나야 했는데, 나가사키에서는 그저 한 자리에 앉아도 도시가 충분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현지인들의 일상도 차분했습니다.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는 낯선 외국인인 저에게 미소 지으며 귤을 하나 쥐여주셨는데, 그 순간 느껴진 따뜻함이 나가사키의 매력 그 자체였습니다. 큰 이벤트가 없어도,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어도, 이 도시 자체가 여유와 고요함으로 사람을 감싸줍니다. ‘고즈넉함’이라는 말이 단순히 조용하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힘이라는 걸 그때 실감했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쿠오카와 나가사키는 불과 몇 시간 거리이지만,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후쿠오카가 활기와 현대를 상징한다면, 나가사키는 기억과 고요함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차이를 온몸으로 느꼈기에, 다음에 규슈를 찾는다면 두 도시를 함께 여행하며 균형을 맞추고 싶습니다. 나가사키에서의 시간은 제게 조용한 위로 같았고, 그래서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