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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시는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그냥 스쳐 지나가기 쉬운 도시 중 하나입니다. 도쿄와 나고야 사이, 교통의 길목에 위치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신칸센 창밖으로만 바라보고 지나치죠. 하지만 저는 이곳에 며칠 머물러 본 뒤, '시즈오카라는 도시는 후지산만 바라보는 도시가 아니다'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즈넉한 차밭의 풍경, 바다 내음이 묻어나는 해안길, 그리고 사람들의 느긋한 생활 리듬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시즈오카시 여행기
시즈오카시 여행기

후지산을 마주하는 특별한 순간

시즈오카에 도착하자마자 제 눈길을 사로잡은 건 역시 후지산이었습니다. 날씨 좋은 날이면 시내 어디서든 그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저는 호텔 창문을 열고 처음 마주했을 때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후지산이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묵직하고 고요하게 다가옵니다. 꼭 누군가 묵묵히 뒤에서 지켜봐 주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특히 저녁 무렵, 붉은 노을빛이 산의 눈 덮인 정상에 스며드는 장면은 평생 잊기 어려운 풍경이었습니다. 그 순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제가 그동안 도시에서 얼마나 바쁘게만 살아왔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죠. '잠깐 멈춰서 숨 고를 시간도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시즈오카 차밭에서 느낀 여유

시즈오카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차 생산지입니다. 실제로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구릉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푸른 차밭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현지 가이드와 함께 작은 차 농가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직접 딴 찻잎으로 우려낸 녹차를 마셔보았습니다. 뜨거운 물에 찻잎이 살짝 풀리면서 은은한 향이 퍼질 때, 몸과 마음이 동시에 풀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농가 주인 어르신은 '좋은 차는 억지로 맛을 내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참 인상 깊었는데, 제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억지로 꾸며내거나 성과를 내려고 애쓰기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흐름 속에서도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뜻 같았거든요. 차 한 잔을 통해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해안 산책길에서의 잔잔한 오후

시즈오카시는 바다와도 가까운 도시입니다. 저는 시미즈 항 근처를 천천히 걸으며 오후 시간을 보냈습니다. 항구에는 작은 어선들이 드문드문 정박해 있었고, 멀리서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왔습니다. 그 풍경이 주는 잔잔함이 참 좋았습니다.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찻집이나 해산물 가게를 만나게 되는데, 저는 그 중 한 곳에 들러 신선한 시라스 덮밥을 먹었습니다. 바다의 소금기와 밥의 따뜻함이 어우러지는 맛은, 그야말로 시즈오카의 맛 그 자체였습니다. 도시적인 화려함은 없지만, 그 담백함이 오히려 제 여행의 기억을 더 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시즈오카시는 화려하게 빛나는 관광지가 아니라, 조용히 머무를수록 매력이 스며드는 도시입니다. 후지산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존재감, 차밭이 선사하는 느긋한 시간, 바다에서 마주한 평온함까지. 각각의 순간이 모여 제게는 오래도록 마음을 쉬게 해주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도쿄와 오사카 사이에 그냥 지나치는 도시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꼭 시즈오카시에서 하루쯤은 멈춰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