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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교토를 여행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내 리스트에 올랐던 곳이 바로 ‘후시미이나리 타이샤’였다. 수천 개의 도리이가 줄지어 이어지는 그 비현실적인 풍경.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시작된 동경이 결국 발걸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직접 그곳을 밟아본 뒤, 나는 왜 이 신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후시미이나리

입장료는 무료, 그러나 시간은 비용이다

후시미이나리 타이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입장료가 없다는 것**이다. 교토 시내의 대부분 유명 사찰이나 정원들은 입장료가 300~1000엔 사이인 데 반해, 후시미이나리는 ‘국민신사’라고 불릴 만큼 많은 이들에게 열려 있다.

하지만 입장료가 없다고 해서 대충 보고 나올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전체를 다 돌려면 최소 2시간, 여유롭게 오르내리면 3시간 이상이 걸린다. 즉, 돈은 들지 않아도 ‘시간’이라는 자원을 제대로 써야 하는 장소다.

처음 나는 단순히 도리이 구간만 보고 내려오려 했다. 그런데 걷다 보니 계속 이어지는 붉은 문들이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문 하나를 지날 때마다 마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중턱 너머까지 와 있었다. 돌아가기는 아쉽고, 끝까지 가기엔 조금 힘든, 그 어중간한 지점에서 나는 비로소 이 공간의 의미를 조금 느낀 듯했다.

가는 길은 간단하지만, 타이밍이 중요하다

후시미이나리는 교토역에서 JR 나라선으로 단 두 정거장 거리다. ‘이나리 역(稲荷駅)’에 내리면 눈앞에 바로 신사의 정문이 펼쳐진다. 접근성은 정말 탁월하다. 지하철로도 갈 수 있지만, JR을 이용하면 더 빠르고 간단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간대**다.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는 단체 관광객과 외국인 여행자들로 붐비기 때문에, 정말 고요한 후시미이나리를 걷고 싶다면 **이른 아침 6~8시** 혹은 **해 질 무렵**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두 번 이곳을 찾았는데, 첫 방문은 오전 10시였고, 두 번째는 해 질 무렵 5시경이었다. 오전에는 도리이마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줄을 서서 사진 찍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오후 늦게 찾았을 때는 햇살이 부드럽게 도리이에 비치고, 사람도 적어 훨씬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이 신사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 사람 소리보다 바람 소리, 새 소리가 더 크게 들렸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산책이 아닌 ‘순례’, 도리이 길의 체험

많은 사람들이 후시미이나리를 ‘도리이 포토존’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곳은 엄연한 산이다. 정식 이름은 ‘이나리산’이고, 그 정상을 향해 계속해서 오르내리는 구조다.

전체 루트는 약 4km 정도. 중간 중간 작은 신사들과 휴게소가 있으며, 체력이 되는 사람은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올 수 있다. 나는 솔직히 정상까지 가지는 못했다. 7부 능선쯤 되는 지점에서 해가 지고 있었고, 내려오는 길이 어두워질 것 같아 그 즈음에서 하산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본 건 단순히 도리이만이 아니었다. 도리이 뒤로 스며드는 빛, 이끼 낀 돌계단, 등산을 겸한 현지 주민, 나무 사이로 보이는 교토 시내 전경. 무엇보다, 내가 지금 ‘어딘가에 속한 것 같은 느낌’. 그 감정이 가장 오래 남는다.

특히 도리이의 하나하나에는 기업이나 개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는 그들이 신사에 기부를 했다는 의미로, 도리이를 세운 사람들의 바람이 그 문마다 담겨 있는 셈이다. 나는 문을 지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여긴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상상해 보곤 했다. 그렇게 걷는 길은 단순한 산책이 아닌, 묵묵한 순례 같았다.

후시미이나리는 관광지가 아니라 ‘경험’이다

많은 관광지는 “와서 보고 가면 되는 곳”이다. 하지만 후시미이나리는 다르다. 이곳은 반드시 ‘걷고’, ‘느끼고’, ‘머무는’ 과정을 통해서만 그 진가가 드러난다.

혼자 걷기에도 좋고, 함께 걷기에도 좋은 장소다. 누구와 함께하든, 또는 혼자이든, 결국은 자신만의 속도로 이 신사를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일까.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각자 다른 기억을 안고 돌아간다. 사진 한 장으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의 기억들. 나에게 후시미이나리는 ‘기록에 남기기보다 마음에 남긴 장소’였다.

지금도 피곤하거나 지칠 때면, 그 붉은 도리이 아래를 천천히 걷던 내 발걸음을 떠올리곤 한다. 그 속도와 리듬은 내 삶에 잠시 쉼표를 만들어줬다. 여행의 목적이 '휴식'이라면, 이보다 더 명확한 목적지를 찾긴 어려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