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하코다테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야경의 도시’라는 이미지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직접 발걸음을 옮겨 본 하코다테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얼굴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홋카이도의 남쪽 끝자락, 바다와 맞닿은 항구 도시인 하코다테는 역사와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고, 그곳을 걸으며 느낀 감정은 단순한 여행의 설렘을 넘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 울림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직접 경험한 하코다테의 역사적인 매력, 항구의 정취, 그리고 바다 풍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 보려 합니다.

하코다테
하코다테

하코다테의 역사,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순간들

하코다테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자꾸만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서양식 건축물과 일본식 목조 가옥이 묘하게 섞여 있는 모습은, 과거 개항장의 흔적이 아직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특히 모토마치 지역에 가면 예전 외국인 거주지였던 건물들이 지금도 카페나 갤러리로 쓰이고 있는데, 돌계단을 오르며 바라보는 그 건물들의 분위기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잠시 멈춰 서서, 이 거리를 오갔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곤 했습니다. 서양인 상인, 일본인 상인, 그리고 바다를 오가던 수많은 배들. 서로 다른 문화가 부딪히고 섞이며 오늘의 하코다테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습니다. 단순히 ‘옛날 건물’이라고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삶의 흔적이 아직도 묵묵히 남아 있기 때문이겠지요.

항구의 정취, 바다와 도시가 만나는 곳

하코다테가 다른 도시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을 꼽으라면 단연 항구의 분위기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코다테 아침시장으로 향하면 바다에서 갓 잡아온 해산물들이 줄지어 놓여 있고,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거리 가득 울려 퍼집니다. 그곳에서 맛본 신선한 성게와 오징어 회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바다의 냄새가 그대로 입안에 번지는 듯한 신선함은, ‘이곳이 정말 항구 도시구나’라는 걸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항구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빨간 벽돌 창고들이 보이는데, 예전에는 실제 창고로 쓰였던 곳들이 지금은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붉은 벽돌이 저녁 햇살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물드는 순간, 저는 무심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바닷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리고, 항구에 묶인 배들이 잔잔히 흔들리는 장면은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습니다.

바다 풍경, 그 앞에서 느낀 고요함

하코다테산 전망대에 오르면 도시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낮에는 드넓게 펼쳐진 바다와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의 대비가 인상적이고, 밤에는 반짝이는 야경이 별빛처럼 빛나며 바다 위에 비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낮에 본 풍경이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세토내해의 푸른빛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차분함을 주었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속에 얽혀 있던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 둘 풀려나갔습니다. 특히 겨울에 찾았을 때는 바닷바람이 차가웠지만, 눈 덮인 도시와 파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오직 그 계절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앞에 서 있으니 ‘아, 내가 이렇게 멀리까지 와 있구나’라는 실감이 나면서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그저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며 스스로와 마주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코다테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역사의 무게가 남아 있는 거리, 활기 넘치는 항구, 그리고 고요한 바다 풍경이 모두 어우러져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제가 하코다테에서 느낀 건, 그곳이 가진 화려함이 아니라 오히려 담백한 매력이었습니다. 잠시 들른 도시였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경험을 안겨주었죠. 혹시라도 홋카이도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삿포로에서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겨 하코다테를 만나 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바다와 사람이 함께 살아온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도시는, 분명히 여행자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남겨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