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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좋아하지만, 늘 새로운 도시 앞에서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이번에는 고베였다. 오사카에서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늘 ‘그다음에 가야지’ 하며 미뤘던 곳.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동했다. 날씨도 좋고, 약속도 없고, 머릿속도 정리 안 되는 날. 그래서 그냥 떠났다. 고베로.
도심에서 벗어나기 딱 좋은 거리감
오사카역에서 한큐 전철을 타고 고베 산노미야역까지는 약 30~40분 정도 걸린다. 의외로 가깝다. 전철 창밖으로 점점 바다 냄새가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 때쯤, 고베에 도착한다. 혼자라는 사실이 더 자유롭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누구의 일정도 맞출 필요 없고, 걷고 싶은 곳만 골라 걸으면 되니까.
고베는 도심이지만, 어딘지 여유롭다. 간사이 특유의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면서도, 조용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특히 당일치기로 딱 알맞은 사이즈. 부담도 없고, 목적 없이 걷기에도 참 좋다.
허브정원으로 향한 케이블카, 그리고 고요함
고베 여행에서 내가 제일 먼저 간 곳은 ‘고베 누노비키 허브정원’이다. 신칸센도 정차하는 신고베역 바로 옆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혼자 탄 케이블카 안, 창밖 풍경이 서서히 올라간다. 도시를 조금씩 내려다보며 올라가는 그 기분, 꽤 근사하다.
허브정원은 그 이름처럼 허브로 가득하다. 계절 따라 피는 꽃들이 다르지만, 여름에는 라벤더 향이 강하게 난다. 걷는 내내 그 향기가 따라붙는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오전 시간, 바람 소리와 내 발걸음 소리만 들리는 길을 걷는 그 기분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나무 벤치에 앉아 허브티 한 잔을 마셨다. 혼자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시간. 오히려 누군가와 있었다면 이런 고요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하버랜드, 바다 앞에서 찍은 나만의 엽서
고베의 유명한 관광지는 많지만, 하버랜드는 꼭 가야 한다. 바다가 펼쳐진 넓은 공원과 고베 포트타워, 대관람차, 모자이크 쇼핑몰이 어우러진 이곳은 마치 한 장의 엽서 같다. 특히 혼자라면 카메라를 들고 걷기에 딱 좋다.
나는 모자이크 광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일몰을 맞이하게 됐다. 바다가 붉게 물들고, 저 멀리 크루즈선이 천천히 지나간다. 그런 장면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으니, 마음 한 구석이 저절로 정돈된다.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찍은 사진보다 그때의 공기와 기분이 더 오래 남는다.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혼자 여행은 더 특별한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느낀 걸, 온전히 나만의 감각으로 저장하게 되니까.
산노미야 골목, 혼자 걷기에 더 좋은 길
해가 지고 나서 산노미야로 돌아왔다. 여기는 고베의 중심지다. 쇼핑몰, 백화점, 지하상가도 많고, 번화한 느낌이지만 그 속 골목길은 다르다.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바, 노포, 감성적인 카페들이 숨어 있다.
나는 우연히 ‘책과 음악이 있는 카페’라는 간판에 끌려 들어갔다. 커피 한 잔과 LP 음악, 그리고 창밖으로 내리는 불빛. 조용히 일기장을 꺼내 몇 줄 적었다. 이곳에서 오늘을 마무리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오늘 하루를 더 깊게 만든 것 같다.
혼자였기에 더 좋았던 하루
고베에서의 당일치기 여행은 ‘혼자’라서 더 특별했다. 말 없이 걷고, 향기를 맡고, 풍경을 바라보고, 그 모든 감각을 천천히 내 안에 담을 수 있었던 시간.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지나쳤을 소리들, 놓쳤을 장면들, 묻히고 말았을 내 감정들까지 모두 꺼내어 느낄 수 있었다.
고베는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히 속을 채워주는 도시다. 당일치기에도 충분하지만, 언젠가는 하룻밤 묵고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혼자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고베는 망설이지 말고 떠나도 좋은 곳이다. 아주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걷기 딱 좋은 도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