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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본토 남쪽, 차로는 갈 수 없고 반드시 배나 비행기를 타야만 닿을 수 있는 곳. 바로 태즈메이니아 주입니다. 처음 이곳에 가기로 했을 때, 솔직히 저는 “호주의 한 구석에 있는 조용한 섬이겠지”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서 느낀 건, 태즈메이니아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호주 안에서도 전혀 다른 시간을 품은 공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공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맑았고, 바람은 차가우면서도 기분 좋게 살결을 스쳤습니다. 도시의 소음에 익숙했던 제게 태즈메이니아는 잠시 숨을 고르라는 듯 속삭이는 곳이었습니다.
호바트에서 시작된 첫인상
태즈메이니아 여행의 시작은 주도 호바트(Hobart)였습니다. 산과 바다 사이에 자리한 이 작은 도시는, 대도시의 화려함은 없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따뜻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토요일 아침에 열리는 ‘살라망카 마켓(Salamanca Market)’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였는데, 저는 이곳에서 현지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 신선한 농산물, 따뜻한 커피 향을 만났습니다. 시장 한 모퉁이에서 만난 빵집 주인은 저를 보자 활짝 웃으며 “여기선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네”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 말대로였습니다. 마켓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은 한결 느긋해졌습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다
태즈메이니아가 특별한 이유는 단연 ‘자연’입니다. 저는 크래들 마운틴(Cradle Mountain) 국립공원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마치 오래된 동화책 속 삽화 같았습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비친 산의 그림자, 그리고 그 옆을 천천히 지나가는 왈라비 한 마리.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자, 제 귀에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만이 들렸습니다. 평소엔 늘 휴대폰 알람과 도시의 소음에 쫓기며 살았는데,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트레킹 도중 만난 한 가족은 아이들과 함께 배낭을 메고 걷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태즈메이니아에서는 ‘자연과 함께 산다’는 말이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실제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역사의 무게, 포트 아서
태즈메이니아는 아름다운 자연만큼이나 묵직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저는 포트 아서(Port Arthur) 유적지를 방문했는데, 과거 죄수들이 수용되었던 장소입니다. 무너진 건물과 돌담, 그리고 가이드가 들려주는 사연들을 듣다 보니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폐허를 걸으며 ‘한때 이곳에서 누군가의 삶과 눈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단순히 관광지가 아닌 인간사의 한 조각을 마주한 듯했습니다. 여행은 결국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태즈메이니아가 남긴 울림
태즈메이니아에서의 며칠은 저에게 특별한 울림을 남겼습니다. 호바트의 작은 시장에서의 웃음, 크래들 마운틴의 고요한 자연, 포트 아서에서 마주한 역사. 그 모든 경험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제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돌아오는 길,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본 태즈메이니아는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했지만, 제게는 거대한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저는 이곳을 떠올리며 다시 숨을 고르고는 합니다. 태즈메이니아는 제게 ‘삶의 속도를 다시 배우게 한 곳’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