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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남호주의 중심 도시, 애들레이드. 시드니나 멜버른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곳을 여행하는 순간부터 저는 “호주의 진짜 여유는 여기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가 크지 않아 복잡하지 않고,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한결 느긋한 온기가 묻어났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택시 기사님이 건네던 따뜻한 인사부터, 시장에서 과일을 건네던 상인의 웃음까지. 애들레이드는 화려함보다 편안함을 안겨주는 도시였습니다.

애들레이드
애들레이드

중앙시장에서 느낀 도시의 숨결

애들레이드를 제대로 만나려면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이 바로 ‘애들레이드 중앙시장(Adelaide Central Market)’입니다. 저는 이 시장을 걷는 동안 단순히 먹을거리를 고르는 게 아니라 도시의 심장 소리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갓 구운 빵 냄새, 치즈를 자르는 소리, 다양한 색깔의 채소와 과일들. 그 사이사이로 들려오는 상인들의 웃음과 손님들과의 대화는 그 자체로 애들레이드의 따뜻한 풍경이었습니다. 저는 시장에서 산 신선한 과일을 바로 베어 물었는데, 달콤한 맛과 함께 도시가 전하는 ‘싱그러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장의 활기는 화려한 쇼핑몰에서 느낄 수 없는, 살아있는 일상의 풍경이었죠.

도심을 감싸는 공원과 예술

애들레이드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공원 지대(Park Lands)’입니다. 도시 지도만 펼쳐봐도 알 수 있는데, 애들레이드의 중심부는 둥글게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저는 그 공원길을 따라 산책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봤습니다. 도심인데도 매연과 소음 대신 바람과 새소리가 들린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시내 곳곳에서는 예술의 기운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미술관’에서는 호주 원주민 예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고, 길거리에는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술이 삶 속에 스며든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포도밭에서 보낸 하루

애들레이드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도시 근교의 포도밭이었습니다. 애들레이드는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생산지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와 가까워,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드넓은 포도밭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와이너리 투어에 참여해 현지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와인을 맛봤습니다. 햇살을 듬뿍 받은 포도는 향이 진했고, 와인을 입에 머금었을 때 퍼지는 풍미는 도시에서 느끼는 맛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와이너리 앞 넓은 잔디밭에 앉아 잔을 들었을 때, 한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여유를 느꼈습니다. 바로 이런 순간 때문에 애들레이드가 ‘호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라는 별명을 얻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애들레이드가 남긴 울림

애들레이드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도시의 삶이 꼭 빠르게만 흘러야 하는 건 아니다’라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시장의 활기, 공원의 바람, 예술의 자유, 그리고 포도밭의 여유. 그 모든 풍경이 제 마음을 천천히 적셨습니다. 돌아오는 길, 저는 애들레이드 강변을 따라 걷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부드러웠습니다. 그 순간 ‘여행지에서 느끼는 행복이란 결국 삶의 속도를 다시 배우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들레이드는 제게 꼭 그런 도시였습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잔잔한 울림을 주는 곳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