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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쿠바를 찾은 건 봄비가 내리던 어느 오후였다. 도쿄에서 전철로 한 시간쯤 북쪽으로 올라가면 만나는 도시, 그것이 쓰쿠바였다. 사람들은 이곳을 ‘과학도시’라고 부른다. 실제로 도시 곳곳에는 연구소와 대학이 줄지어 있고, 하늘에는 드론이 날며, 거리의 전광판에는 실시간 공기 질이 표시된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 ‘첨단’보다도 이 도시가 풍기는 묘한 고요함에 더 끌렸다. 도시의 표면은 현대적이지만, 그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따뜻하고 인간적인 리듬이 숨어 있었다.

쓰쿠바

기술의 도시, 그러나 사람의 온기가 있는 곳

쓰쿠바의 첫 인상은 ‘정돈된 도시’였다. 도로는 반듯하고, 자전거 도로가 따로 나 있으며, 신호등의 색감조차 부드럽게 느껴졌다. 도쿄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모두 일정한 속도로 걷고 있었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쓰쿠바역에 내리자 유리로 된 천장 사이로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그 아래, 노트북을 펼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 그리고 평일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노부부가 한 공간 안에서 어색하지 않게 섞여 있었다.

그날 나는 쓰쿠바센터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목적지는 정해두지 않았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달려보기로 했다. 길가에는 벚나무가 늘어서 있었고, 비가 그친 후라 공기에는 흙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얼마쯤 달리자 도심이 끝나고 갑자기 들판이 나타났다. 그 뒤로 멀리 보이는 쓰쿠바산이 인상적이었다. 도시와 자연이 손끝으로 이어져 있는 듯한 풍경. 그 조화로움이 이 도시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과학과 기술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한 리듬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쓰쿠바산 입구 근처에 도착하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작은 찻집에 들어갔다. 주인 아저씨는 “비 온 뒤엔 산이 더 예쁘죠”라며 따뜻한 녹차를 내어주었다. 창문 밖으로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사이로 벚꽃잎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동안, 도시의 빠른 시간에서 잠시 벗어나 온몸이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다. 기술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에도 이렇게 ‘멈춤의 순간’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다.

쓰쿠바에서 느낀 일상의 조화

다음 날 아침, 나는 쓰쿠바대학 근처의 조용한 거리를 걸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실험 이야기나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대화엔 긴장감보다는 설렘이 담겨 있었다. ‘새로운 걸 만드는 기쁨’이 공기 중에 퍼져 있었다. 그들의 에너지는 단순한 과학의 언어를 넘어, 인간적인 열정으로 느껴졌다.

근처의 ‘쓰쿠바 익스프레스 공원’에서는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고 놀고 있었다.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어르신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기술이 발전한 도시라면, 어쩌면 더 차가워야 할 것 같은데, 이곳은 오히려 따뜻했다. 사람과 기술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나란히 걸어가는 듯한 도시. 그게 쓰쿠바의 진짜 얼굴이었다.

점심은 쓰쿠바산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 메뉴는 ‘나또돈(낫토 덮밥)’이었다. 낫토 특유의 냄새가 살짝 올라왔지만, 첫 숟가락을 먹자 놀라울 만큼 부드럽고 고소했다. 식당 아주머니는 내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처음엔 다들 싫어하지만, 한 번 익숙해지면 잊지 못해요.” 마치 쓰쿠바에 대한 설명 같았다. 처음엔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천천히 알고 나면 따뜻하고 묘하게 중독적인 도시.

현대와 여유가 만나는 도시, 쓰쿠바의 매력

쓰쿠바는 일본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있다. 도쿄의 위성도시이자, 첨단 과학의 중심지. 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람 중심의 도시 설계’가 돋보인다. 예를 들어, 도심 곳곳에는 ‘스마트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그 위에 앉으면 태양광으로 충전된 전기를 통해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고, 와이파이도 자동 연결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벤치 옆에 늘 ‘작은 정원’이 있다는 점이다. 기술이 편리함을 주고, 자연이 마음의 쉼을 주는 구조. 나는 그 조합이 이 도시의 정체성처럼 느껴졌다.

저녁 무렵, 다시 쓰쿠바센터로 돌아왔다.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유리 빌딩의 벽면이 붉게 물들었다. 사람들은 퇴근길에 커피를 들고 걷고 있었고,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 음악 소리가 유리 건물 사이로 잔잔히 퍼졌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이 도시엔 숨 쉴 틈이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적인 리듬을 지켜가는 곳. 쓰쿠바는 그런 도시였다.

돌아오는 길, 전철 창문 밖으로 쓰쿠바산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사람과 기술, 자연과 도시, 과거와 미래가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 아마 그것이 내가 쓰쿠바에서 찾은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곳은 단순한 과학 도시가 아니라, ‘균형의 도시’였다. 그리고 그 균형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무료 이미지 참고: https://pixabay.com/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