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프랑스 남부의 햇살은 유난히 따뜻하다. 그중에서도 몽펠리에는 그 빛을 가장 아름답게 품은 도시였다. 파리의 세련됨이나 니스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매력. 이곳은 조금 더 인간적이고, 조금 더 솔직한 도시였다. 여행을 시작한 첫날, 역 앞 광장에서 부는 바람 속에는 커피와 바게트,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 도시가 마음에 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몽펠리에
몽펠리에

코메디 광장, 도시의 심장 속을 거닐다

몽펠리에의 중심은 단연 ‘코메디 광장(Place de la Comédie)’이다. 이름부터가 흥미롭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이름보다 분위기에 있다. 원형으로 펼쳐진 넓은 광장 한가운데에는 분수가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싼 건물들은 모두 고풍스럽다. 오래된 석조 건물 위로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지고, 거리의 음악가들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어떤 이들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비둘기를 쫓는다. 그 풍경이 너무 평화로워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봤다.

광장 옆의 카페에 앉아 ‘카페 크렘’을 주문했다. 프랑스식 라떼라고 해야 할까. 부드럽고 향긋한 커피 맛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옆 테이블의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마 이 도시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의 모습이 광장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여행 중 가장 따뜻한 순간은 언제나 이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 속에서 찾아온다.

구시가지의 골목, 예술과 삶이 뒤섞인 공간

코메디 광장을 벗어나면 곧바로 구시가지로 이어진다. 몽펠리에의 옛길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돌바닥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고, 담벼락마다 그래피티와 포스터가 겹겹이 붙어 있다. 그런데 그 무질서함이 오히려 도시의 개성이었다. 젊은 예술가와 대학생들이 많은 도시답게, 거리 곳곳이 창의력으로 살아 있었다. 벽 한쪽에는 형광색 물감으로 그려진 사람 얼굴이 있었고, 맞은편 벽에는 누군가 “Art is everywhere”라고 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말 그대로였다.

길을 걷다가 문득 조용한 골목의 작은 화방을 발견했다. 안에는 젊은 화가가 캔버스 위에 붓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웃으며 “Bonjour!”라고 인사했다. 나는 서툰 프랑스어로 “Tres beau(아름답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도시가 제 그림이에요. 여긴 늘 색이 변하거든요.” 그의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햇살, 거리, 사람, 그리고 예술. 몽펠리에는 그렇게 하루하루 색을 바꿔가며 살아 있는 도시였다.

페이루 공원에서 느낀 남프랑스의 오후

언덕 위에 있는 ‘페이루 공원(Promenade du Peyrou)’은 몽펠리에의 하이라이트였다. 천천히 언덕길을 오르며 땀이 맺히기 시작했지만, 정상에 도착하자 그 모든 피로가 날아갔다. 멀리 지중해 바람이 스쳐왔고, 하늘은 짙은 파란색으로 빛났다. 가운데 있는 기념비와 아치형 건축물은 웅장했지만, 그 주위를 산책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유로워 보였다. 누군가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책을 읽고, 또 다른 사람은 잔디밭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느슨해졌다.

잠시 벤치에 앉아 도시를 내려다봤다. 햇살은 느리게 기울었고, 건물 위로 노을빛이 번졌다. 바람은 따뜻했고,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여행이란 결국 이런 순간을 찾기 위한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관광지도, 유명한 맛집도 아닌, 그저 나만의 고요한 순간. 그게 몽펠리에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밤의 몽펠리에, 음악과 불빛이 깃든 거리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몽펠리에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거리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젊은이들은 와인 잔을 부딪히며 웃고 있었다. 나는 작은 비스트로에 들어가 프랑스식 저녁을 주문했다. 포크로 천천히 고기를 자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흐르는 불빛들이 반짝였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와인 한 모금이 입안에서 퍼지자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았다. 이 도시의 리듬은 빠르지 않았다. 음악처럼,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코메디 광장은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분수 주위엔 젊은 커플들이 모여 있었고, 거리 공연자가 재즈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선율이 공기 속에 스며들며 도시를 감싸 안았다. 나는 그 음악에 이끌리듯 천천히 걸었다. 그 순간, 이 도시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조금 더 머물러도 괜찮아요.’

프랑스 남부의 도시들은 대체로 따뜻하지만, 몽펠리에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인간적인 온기를 지니고 있다. 그건 아마도 이곳 사람들의 눈빛, 거리의 색감, 그리고 공기의 향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진심이 있는 도시. 그게 바로 몽펠리에였다. 지금도 가끔 오후 햇살이 따뜻한 날이면, 그곳의 공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그 골목길을 걷고 싶어진다. 천천히, 아무 목적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