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 레체(Lecce)는 처음엔 그저 작은 도시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 발을 딛는 순간, 햇살이 돌 위에서 반짝이는 장면을 본 그때부터, 나는 이곳이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빛으로 만든 도시’라는 걸 느꼈다. 레체의 돌은 단단하지 않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햇빛을 머금는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거리를 걷다 보면 돌이 아니라, 시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바람이 골목을 스치고, 햇살이 건물 벽을 따라 흐를 때, 모든 게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햇살이 만든 도시, 레체의 첫인상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눈을 찡그렸다. 남부의 태양이 너무 밝았다. 하지만 그 강렬한 빛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걸음을 옮기자마자, 노란빛의 돌담과 하얀 골목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리마다 교회의 첨탑이 보이고, 벽면에는 조각들이 살아 숨 쉬는 듯 새겨져 있었다. 레체는 ‘남부의 피렌체’라 불릴 만큼 바로크 양식이 아름답다. 하지만 내가 느낀 레체의 매력은 화려함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이었다. 건물 벽에는 햇빛에 바랜 색이 남아 있었고, 창문 아래에는 손으로 쓴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누군가의 기억, 누군가의 일상이 이 도시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했다. 좁은 골목을 걷다 작은 광장에 다다랐을 때, 현지인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노인은 신문을 접으며 내게 말했다. “레체의 돌은 살아있지. 매일 색이 달라지거든.”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날 저녁, 석양이 지고 나서 다시 그 거리를 걸었을 때, 같은 건물이 전혀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노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골목 속에 피어난 예술과 사람들
레체의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다. 하지만 길을 잃어도 괜찮다. 그 안에는 언제나 새로운 장면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한 골목에서는 노인이 손수 만든 도자기를 진열해두었고, 다른 골목에서는 학생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는 좁은 돌길을 타고 퍼져 나가,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작은 수공예 상점에 들어갔다. 주인 할머니가 만든 목걸이가 햇빛에 반짝였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손수건을 내밀며 말했다. “이건 우리 마을 무늬야. 예전엔 손으로만 만들었지.” 그 말 속에는 세월이 담겨 있었다. 그 따뜻한 눈빛과 손끝의 거칠음이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다. 레체의 사람들은 여유롭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보내는 게 일상이었고, 아이들은 광장 분수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잘 사는 것’보다 ‘잘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밤이 내리면 더 빛나는 도시
레체의 밤은 조용하지만, 그 속엔 따뜻한 숨결이 있다. 해가 지면 황금빛 돌들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가로등 불빛이 벽에 닿으면, 마치 불이 아니라 햇살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저녁 무렵, 산타 크로체 대성당 근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거리의 악사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고, 그 옆에서 한 여자가 천천히 춤을 추고 있었다. 아무도 소리치지 않았고,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미소를 지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때 내 옆에 앉은 청년이 말했다. “여행자는 금방 지나가지만, 이 도시는 늘 같은 속도로 살아가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다. 레체의 밤하늘은 별보다 따뜻했다. 불빛에 물든 돌담이 은은하게 빛나고, 그 사이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공기 속에 스며들었다. 그 조용한 울림이, 내 마음 깊은 곳까지 퍼졌다.
레체를 떠나던 마지막 날, 골목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없었지만, 돌벽 위에는 여전히 어제의 햇살이 남아 있었다. 바람이 부드럽게 불었고, 창문에 걸린 꽃잎이 흔들렸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도시는 빛으로 말하고, 사람은 그 빛을 따라 살아간다.’ 레체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 소박함 속에 깊은 감동이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돌과 햇살이 만든 이 도시에서 나는 느렸다. 그러나 그 느림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리듬이었다. 그리고 그 리듬이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이제도 가끔 레체의 하늘을 떠올린다. 그 빛의 온도, 그 바람의 속도, 그리고 그 조용한 아름다움. 아마도 레체는 내 마음 속에서 계속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