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에스푸(Espoo)에 도착합니다. 여행객들에게는 헬싱키나 투르쿠에 비해 덜 알려진 도시지만, 바로 그 점이 에스푸의 매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곳은 ‘핀란드 사람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창 같은 도시입니다. 화려한 관광명소는 적지만, 호수와 숲, 그리고 사람들의 잔잔한 삶이 여행자에게 진한 울림을 남깁니다.

핀란드
핀란드

누크시오 국립공원에서의 고요한 산책

에스푸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누크시오 국립공원(Nuuksio National Park)입니다. 저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숲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건 도시와 전혀 다른 공기였습니다. 맑고 서늘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고, 나무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숲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지만, 동시에 자연 그대로의 거칠음도 남아 있었습니다. 호수 위에는 안개가 옅게 깔려 있었고, 물가에서는 오리들이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호숫가 바위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바람 소리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고요 속에서 제 마음도 천천히 정리되는 듯했습니다. 길을 걷다 보니 현지 가족들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웃으며 뛰어다니고, 부모님들은 커피와 샌드위치를 나눠 먹고 있었죠. 그 평범한 장면이 유난히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마도 ‘이게 바로 핀란드 사람들의 삶이구나’라는 걸 눈앞에서 직접 본 순간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현대적인 도시와 자연의 조화

에스푸의 또 다른 매력은 ‘현대적인 도시와 자연의 공존’입니다. 헬싱키와 가까운 만큼 대기업 본사와 연구소, 대학교가 많아 도시적인 분위기가 강합니다. 하지만 도시 어디에서나 조금만 벗어나면 숲과 호수, 공원이 펼쳐집니다. 저는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한 쇼핑몰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옆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바쁘게 출근길을 걷고, 다른 쪽에서는 연못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은 한국의 대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습니다. 또한 에스푸의 건축물들은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나무와 유리, 철재를 활용한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건축 양식은 숲과 도시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람들이 자연과 경쟁하지 않고, 그 속에 스며들어 살아간다’는 감각이었습니다.

호숫가의 저녁, 일상의 따뜻함

에스푸 여행 중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호숫가에서 맞이한 저녁이었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호수 근처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해가 지면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물 위에는 노을빛이 길게 번졌고, 한 소년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그의 옆에서는 강아지가 잔잔히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죠. 그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고요하고 따뜻했습니다. 저는 도시에서 늘 분주하게 살아왔기에, 그 순간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아, 이렇게 단순한 시간이야말로 진짜 행복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후 작은 카페에 들러 따뜻한 코코아를 마셨습니다. 창밖으로는 호수가 보였고, 카페 안에는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느낀 편안함은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에스푸가 남긴 울림

에스푸는 화려하거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담백함 속에서 진정한 핀란드의 삶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크시오 국립공원의 숲길,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풍경, 호숫가에서 맞이한 저녁의 따뜻함. 이 모든 순간이 모여 에스푸라는 도시를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 여행을 계획할 때 헬싱키만을 떠올리지만, 저는 꼭 에스푸를 함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곳은 ‘북유럽의 일상’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도시입니다. 언젠가 다시 핀란드를 찾는다면, 저는 분명히 다시 에스푸로 향할 겁니다. 그곳에서 또 한 번 고요와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