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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공기’였다. 도쿄나 오사카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냄새가 아니라, 조금은 느리고 푸른 냄새였다. 역 앞을 나서자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여름 햇살에 반사된 녹음이 눈부시게 번졌다. 일본 사람들은 센다이를 ‘숲의 도시(杜の都)’라고 부르는데, 그 말이 정말 실감났다. 도시 한복판임에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기분이었다.
탄넨지에서 시작된 여름의 하루
센다이를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들른 곳은 탄넨지(瑞鳳殿)였다. 이곳은 센다이를 세운 다테 마사무네의 영묘로, 일본 역사 속에서도 손꼽히는 장군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길은 나무 향으로 가득했고, cicada(매미) 소리가 여름의 리듬을 만들어 주었다. 계단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 순간 불어오는 바람이 피부에 닿자 금세 시원해졌다. 탄넨지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입구를 지나면 검푸른 숲 사이로 다테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문이 보였고, 그 너머에는 금빛으로 장식된 영묘가 숨어 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금색 장식이 숲의 어둠과 묘하게 어우러지며, 마치 시간의 틈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풍경을 바라봤다. ‘이런 게 평화구나’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그게 바로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조용한 거리 속의 따뜻한 일상
탄넨지에서 내려와 센다이 시내로 돌아오니 오후 햇살이 거리를 덮고 있었다. 번화가인 이치반초 거리에는 카페와 작은 상점들이 이어져 있었고, 가게 문 앞에는 여름 한정 음료 메뉴가 걸려 있었다. 무심코 들어간 카페에서 아이스 커피를 주문했는데, 창가 자리에 앉자 바람이 천천히 커튼을 흔들었다. 내 앞에는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청년, 그리고 창가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는 중년 부부가 있었다. 도시는 조용했지만, 사람들의 일상은 따뜻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은 이런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센다이의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도 유난히 친절했다. 길을 헤매고 있으면 먼저 다가와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아주머니는 버스 정류장까지 직접 안내해주며 “센다이는 여름에도 나무가 많아 시원해요.”라고 웃어 보였다. 그 미소 하나에 도시의 인상이 확 달라졌다.
센다이의 밤, 그리고 여운
저녁 무렵, 나는 센다이 역 근처의 상점가로 향했다. 거리에는 야키토리 냄새가 흘러나왔고,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골목에 퍼져 있었다. 한 가게 앞에 걸린 ‘牛たん(규탄, 소혀 구이)’ 간판이 눈에 띄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센다이 하면 역시 규탄이다.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따끈한 밥 한 숟가락에 구운 고기 한 점을 얹으니 세상의 모든 근심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식당 주인은 “센다이 여름은 덥지만, 밤엔 놀라울 만큼 선선하죠.”라며 맥주 한 잔을 따라 주었다. 그 한마디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풀렸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거리의 불빛이 번져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임에도 하늘에는 별이 몇 개 떠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렸고, 거리 곳곳에서는 버스킹하는 젊은이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그 노래를 들었다. 단순한 기타 선율과 청춘의 목소리. 그 순간, 이 도시가 왜 ‘숲의 도시’로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센다이의 여름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계절이었다.
센다이에서 배운 것들
센다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보이는 산 능선과 초록빛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여름의 센다이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관광지의 스펙터클 대신, 그 안의 ‘조용한 온기’가 여행자를 붙잡는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때의 바람과 나뭇잎 소리가 남아 있다. 그리고 문득 지쳐 있을 때면 생각할 것이다. ‘그 여름, 센다이의 숲길을 걸었지. 그늘 속에서 잠시 쉬었고, 아무 일도 없었지만 참 좋았지.’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잠시라도 그런 시간을 다시 만나기 위해. 센다이의 여름은, 내게 그런 ‘쉼’의 의미를 남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