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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라는 이름을 처음 지도에서 발견했을 때, 솔직히 말해 그저 작은 항구 도시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나 예술적인 카우나스에 비하면 여행자들의 관심이 덜한 곳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직접 발을 디딘 순간, 클라이페다는 ‘묵직한 일상과 자유로운 바람이 함께 머무는 도시’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발트해의 바람은 이곳을 거칠게 스쳐 갔지만, 도시 자체는 의외로 따뜻하고 사람 냄새가 가득했거든요.

 

도시를 거닐며 만난 클라이페다의 리듬

클라이페다 올드타운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담함 덕분에 오히려 더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 좁은 돌길을 걸을 때마다 붉은 벽돌 건물과 독일풍 목조 건축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는데, 이 도시가 과거 독일과 러시아, 리투아니아의 역사를 함께 품어온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광장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이 뛰어놀고, 현지인들이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행자라기보다 그저 일상 속을 스쳐 가는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죠. 저는 그게 참 좋았습니다. 관광지를 찾으려 분주히 움직이지 않아도, 도시 자체가 ‘여행의 무대’가 되어 주는 곳. 클라이페다는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쿠로니안 스핏, 바람과 모래가 만든 풍경

클라이페다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단연 쿠로니안 스핏(Curonian Spit)입니다. 페리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데, 짧은 항해 동안 맞은 바람만으로도 마음이 설렜습니다. 바다와 숲, 모래 언덕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엄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언덕을 걸으며, 한쪽에는 발트해의 차가운 파도가, 다른 쪽에는 잔잔한 석호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대조적인 풍경이 신비로웠습니다. 바람은 거칠었지만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모래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문득 제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거든요. 쿠로니안 스핏의 작은 마을, 니다(Nida)에서는 알록달록한 목조 가옥들이 모여 있었고,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며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차와 함께 스모크드 피시를 맛봤는데, 그 소박한 한 끼가 이상하리만큼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항구 도시의 일상과 따뜻한 사람들

다시 클라이페다 시내로 돌아오면, 항구 도시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가는 모습,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깃발들, 그리고 어디서든 들려오는 갈매기 소리. 이 모든 풍경이 도시의 배경음악처럼 어울렸습니다. 시장에서는 갓 잡아온 생선과 신선한 채소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상인들은 바쁜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제가 서툰 영어로 흑빵을 주문했을 때, 상인은 웃으며 손짓으로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굳이 제게 치즈 조각을 나눠 주었습니다. 언어가 달라도 마음은 통한다는 걸, 클라이페다의 시장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항구 근처 작은 술집에 들어가 맥주를 한잔했습니다. 현지인들은 경기 이야기를 나누며 크게 웃고 있었는데, 그 활기 속에서 묘하게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낯선 곳에 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아마 그게 클라이페다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릅니다.

클라이페다가 남긴 인상

클라이페다는 처음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도시는 아닙니다. 하지만 차분하게 걸으며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면, 도시의 매력은 서서히 마음속에 스며듭니다. 올드타운의 담백한 풍경, 쿠로니안 스핏의 장엄한 자연, 항구 시장의 활기와 따뜻한 미소까지. 그 모든 것이 모여 클라이페다라는 도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배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왜 여행은 늘 낯선 도시에서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걸까?” 아마도 그건,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야 비로소 내 일상의 속도와 무게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클라이페다는 바로 그런 도시였습니다. 소란스럽지 않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그래서 언젠가 다시 발트해를 찾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다시 이곳으로 향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