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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라는 도시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터키의 수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저 역시 터키라고 하면 곧바로 이스탄불을 떠올렸으니까요. 하지만 앙카라에 도착해 보니, 이곳은 화려한 관광도시가 아닌, 터키라는 나라의 뿌리와 현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금 차분하고 단단한 분위기,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낯설지만 따뜻한 기운. 첫인상은 그랬습니다.
아타튀르크 영묘에서 느낀 묵직한 울림
앙카라 여행의 시작은 단연 아타튀르크 영묘(아니트카비르)였습니다. 터키 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무덤이자 기념관이 있는 곳으로, 터키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성지’ 같은 장소였습니다. 입구부터 길게 이어진 돌길을 걸으며 두 줄로 늘어선 사자상들을 지나자, 자연스레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내부 전시관에서는 아타튀르크가 남긴 글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앞에 서 있는 터키 학생들의 눈빛은 진지하고도 자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저는 터키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그들의 존경심이 느껴졌습니다. 영묘 앞 넓은 광장에 서니, 앙카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탁 트인 하늘 아래, 그곳에서 잠시 바람을 맞으며 터키라는 나라가 걸어온 길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터키 사람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장소라는 게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앙카라 성채에서 본 옛 도시의 모습
앙카라가 수도라는 사실은 다소 현대적인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이곳에도 오래된 역사적 흔적이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앙카라 성채였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성벽과 함께 중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들이 나타납니다. 성채 위에 오르면 앙카라 구시가지와 현대적인 빌딩이 공존하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붉은 기와지붕이 이어진 마을, 멀리서 보이는 고층 건물, 그리고 저 멀리 펼쳐진 언덕들까지. 과거와 현재가 한 프레임에 담긴 듯한 장면이었죠. 성채 근처 작은 카페에 들어가 터키 차 ‘차이(çay)’를 마셨습니다. 진한 홍차 향과 함께 달콤한 로쿰을 곁들였는데, 따뜻한 차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여행의 피로가 스르르 풀렸습니다. 저는 그 순간 앙카라가 단순히 행정의 중심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과 삶이 녹아 있는 도시라는 걸 느꼈습니다.
앙카라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앙카라의 매력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일상의 풍경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시장을 지나며 만난 과일 가게 주인은 “한국에서 왔냐”고 묻더니,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며 웃었습니다. 그 따뜻한 미소 덕분에 언어의 장벽 따위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녁 무렵, 케네디 거리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거리 악사가 부드러운 선율을 연주하고 있었죠. 여행자가 아니라 마치 이 도시의 주민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이스탄불의 화려한 불빛과 달리, 앙카라의 저녁은 잔잔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앙카라 사람들이었습니다. 외국인 여행자가 많지 않은 도시라 그런지, 제가 길을 묻거나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면 모두 기꺼이 도와주었고, 그들의 친절은 계산된 호의가 아닌 진심처럼 느껴졌습니다.
앙카라가 남긴 의미
앙카라는 여행지로서 ‘반짝이는 볼거리’는 적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머물다 보면, 이 도시만의 깊고 단단한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타튀르크 영묘에서의 묵직한 울림, 앙카라 성채에서 내려다본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리고 일상 속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까지. 저는 앙카라에서 ‘화려함’보다 ‘차분함’을 배웠습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마치 한 템포 느려진 시계처럼 흘렀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터키를 찾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앙카라에서 또다시 잠시 멈춰 서고 싶습니다. 수도라는 이름에 가려진,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이 도시의 매력을 조금 더 오래 느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