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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향기’였다. 레몬 향이 바람에 섞여 코끝을 간지럽혔고, 햇빛은 마치 금빛 필터처럼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나폴리만을 내려다보는 이 작은 도시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지, 단 10분 만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렌토는 화려한 듯 소박하고, 관광지답게 북적이면서도 묘하게 조용한 정서를 품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오늘 하루는 그때의 감정과 풍경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아보고 싶다.

소렌토
소렌토

 

아침의 소렌토, 바다보다 먼저 빛이 깨어난다

아침에 숙소 창문을 열자, 눈앞이 환하게 열리며 바다가 펼쳐졌다. 빛이 수면 위로 튕기고, 멀리서 천천히 움직이는 배들이 늘어선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테라스에 나와 잠시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곳 사람들은 대체 이런 아침을 매일 보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마을 골목으로 내려가니 이미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작은 카페에서 갓 구운 크루아상을 꺼내놓고 있었고, 노부부는 천천히 걸으며 인사를 나눴다. 이 도시의 아침 리듬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소렌토만의 속도’가 있다. 나는 그 속도에 발을 맞추기 위해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소렌토의 골목길, 시간의 결이 그대로 스며 있는 풍경

소렌토 골목을 걷다 보면 도시 전체가 향기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레몬 비누, 레몬 향초, 레몬 사탕… 어딜 가나 레몬이 있고, 사람들은 그 향에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웃으며 걸었다. 그리고 길을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들. 화려한 듯 소박하고, 과한 듯 세련된 그런 감성이 이 도시에는 묘하게 잘 어울린다. 유리창 너머로 반짝이는 세라믹 그릇들, 손으로 그려 넣은 화려한 패턴, 그리고 유럽풍 잔들이 질서 있게 놓여 있는 모습이 집으로 들고 가고 싶을 만큼 예뻤다. 그중에서도 오래된 빵집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따뜻한 빵 냄새가 골목 전체에 퍼져 있었고, 작은 종업원이 웃으며 “부온조르노!”라고 인사해줬다. 그냥 일상적인 인사였을 텐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환해졌다. 여행 중 이런 사소한 친절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해변을 향한 오후 산책, 천천히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

정오가 지나갈 때쯤 나는 바다로 내려가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이곳의 바다는 높은 절벽 아래에 자리해 있어 내려가는 동안 바람이 얼굴에 와닿고, 점점 더 세지는 파도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소렌토의 바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색을 하고 있었다. 투명한 푸른빛에 약간의 탁함이 섞여 있어 현실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야말로 ‘지중해의 색’이었다. 해변 근처에 도착하니 나무 데크 위에서 사람들이 햇살을 쬐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뛰놀고, 연인들은 나란히 앉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적한 그림자를 찾아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바람만 쐬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풀어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그런 장소가 바로 소렌토였다.

절벽 위 레스토랑에서 맞이한 황금빛 저녁

소렌토의 저녁은 정말 특별하다. 특히 절벽 위 레스토랑에서 바라본 노을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날 정도다. 자리 안내를 받고 창가에 앉자마자, 이미 바다는 분홍빛과 주황빛이 섞인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해산물 리조또와 레몬 와인을 주문했다. 이곳에서 먹는 레몬 와인은 산뜻하고 부드러워서 여행의 피로감을 단숨에 날려준다. 해가 천천히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도 모두 조용해졌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노을만 바라보았다. 그 순간의 공기, 온도, 색감, 그리고 약간의 소음까지도 완벽했다. 음식을 한 숟갈 떠먹고 난 뒤, 나는 스스로에게 살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런 순간 때문에 여행을 하지.”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말하고 나서도 마음이 오래 따뜻했다.

소렌토에서 보낸 하루가 남긴 것들

소렌토는 화려한 모험을 주는 여행지는 아니다. 대신, 너무 복잡한 마음을 잠시 꺼내놓고 조용히 정리할 수 있는 장소다.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리고, 노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환해지는 그런 도시. 여행을 하면서 가장 감사했던 건, 누군가 억지로 감동을 강요하는 풍경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렌토에서의 하루는 내게 오래 남았고,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여행 중 계속 품게 만들었다. 소렌토는 아마 그런 도시일 것이다. 떠날 때 “조금 더 있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