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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타라는 도시는 일본 여행을 계획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사람들이 덜 찾는 곳에는 오히려 진짜 일상이 살아 있고, 관광지의 틀에 갇히지 않은 풍경이 있다고 믿었거든요. 실제로 발을 들여놓은 사카타는 제 예상보다 훨씬 따뜻하고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옛 항구 도시에서 만난 시간의 잔상
사카타를 처음 마주한 건 항구였습니다. 바다와 맞닿은 항구에는 아직도 어선들이 드나들고 있었고, 바닷바람 속에는 비릿하면서도 신선한 냄새가 묻어났습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하얀 창고 건물들을 바라보며, 이곳이 한때 무역으로 번성했던 도시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특히 산쿄 소코(山居倉庫)는 사카타를 대표하는 장소였습니다. 100년 넘게 쌀을 보관하던 창고는 지금은 박물관과 상점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나무로 지어진 긴 건물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창고 앞에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었죠. 그 길을 걸으며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쌀을 나르며 삶을 이어갔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사카타의 맛, 쌀과 사케 그리고 바다
사카타는 예부터 쌀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현지에서 먹은 쌀밥은 유난히 윤기가 흐르고, 한 숟가락만으로도 풍성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쌀이 맛있으니 당연히 사케도 훌륭했습니다. 작은 양조장에서 마신 사케는 입 안에서 맑게 퍼지며, 은근한 단맛과 깊은 향을 남겼습니다. 현지인이 “사카타 사람들은 사케로 하루를 마무리한다”라고 한 말이 괜히 들린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은 이 도시의 또 다른 자랑이었습니다. 항구 근처 시장에서는 갓 잡아 올린 생선과 게, 조개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중 특히 신선한 스시와 회덮밥은 여행의 피로를 단번에 잊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맛본 바다참치와 게살은 말 그대로 바다의 선물이었고, 그 순간 ‘사카타에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요리야마 공원과 느릿한 일상
사카타의 매력은 바다뿐만 아니라, 작은 일상 속에도 있었습니다. 언덕 위 히요리야마 공원(日和山公園)에 오르면 사카타 항구와 일본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바닷바람에 머리가 흩날리고,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그 풍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공원 한쪽에는 옛 등대가 남아 있었는데, 그 앞에 서니 ‘이 빛을 따라 수많은 배가 집으로 돌아왔겠구나’라는 생각에 괜히 뭉클해졌습니다. 도심 속을 걷다 보면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의 발자취가 더 많이 보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학생들,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 그리고 시장에서 손님과 흥정하는 상인들. 그 모습들은 특별할 것 없지만, 바로 그런 평범함이 도시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카타가 남긴 울림
사카타에서의 며칠은 제게 ‘여행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유명한 랜드마크나 화려한 건물 대신, 이곳에는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 켜켜이 쌓인 풍경이 있었습니다. 창고 앞에서 느꼈던 오래된 나무의 그림자, 항구에서 마주한 바다의 숨결, 그리고 한 잔의 사케에 담긴 여유. 그 모든 것이 사카타라는 도시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카타는 크게 떠들지 않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도시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눈이 내리는 겨울의 항구를 꼭 보고 싶습니다. 파도 위로 흩날리는 눈송이는, 분명 또 다른 울림을 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