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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작은 항구도시, 오타루. 삿포로에서 기차로 단 30~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이곳은, 처음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마치 오래된 영화 속 장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바다 냄새와 함께 스치는 바람, 그리고 어딘가 낡았지만 따뜻한 거리 풍경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천천히 만들죠. 저는 오타루를 두 번 다녀왔는데, 여름과 겨울 각각의 얼굴이 너무 달라서 마치 두 도시를 여행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오타루 운하, 그 고요한 물결
오타루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운하입니다. 길게 뻗은 물길 양쪽으로는 옛 창고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벽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여름에 갔을 때는 물 위에 배들이 느리게 지나가며 잔잔한 파문을 만들었고, 관광객들은 운하를 따라 걷거나 사진을 찍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운하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지붕과 길, 그리고 수면 위에 비치는 가로등 불빛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보였죠. 그 순간 저는 한참 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그냥 그 풍경 속에 서 있었습니다. 찬 공기와 함께 코끝을 스치는 바닷내음, 그리고 물결 위에 반짝이는 불빛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유리공예와 오르골,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오타루는 유리공예와 오르골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사카이마치 거리에는 유리공방과 오르골 가게가 줄지어 있어, 산책하며 구경하기 딱 좋습니다. 저는 한 유리공방에 들어가 직접 잔을 만들어보는 체험을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유리관을 불로 달구고 모양을 잡는 과정에서, 장인의 손길이 왜 특별한지 절로 느껴졌습니다. 완성된 잔을 받아 들었을 때, 비록 모양이 조금 삐뚤었지만 제 손으로 만든 유일한 기념품이라 더 애착이 갔습니다. 오르골 가게에서는 작은 상자를 열었을 때 흘러나오는 맑은 선율이 마음을 간질였습니다. 여행지에서 들었던 그 멜로디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오타루의 바람과 함께 떠올라, 잠시나마 그곳으로 마음을 데려다주곤 합니다.
맛과 풍경이 함께하는 여행 코스
오타루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는 ‘오타루 수산시장’입니다. 신선한 해산물과 스시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죠. 저는 이곳에서 성게와 연어알이 듬뿍 올라간 해산물 덮밥을 먹었는데, 그 한입에서 바다의 모든 풍미가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르타오(LeTAO)’의 치즈케이크.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이 커피와 함께라면 완벽한 오후를 만들어 줍니다. 식사 후에는 바닷가로 나가서 오타루항을 걷는 것도 추천합니다. 수평선 너머로 저무는 석양이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이는 장면은,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장관입니다.
오타루는 그저 예쁜 관광지가 아닙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깊어진 정취, 그리고 사람들의 손길이 남긴 온기가 곳곳에 배어 있는 곳입니다. 천천히 걸으며 골목골목을 둘러보면, 그 안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삶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저는 다음에 오타루에 간다면,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냥 하루 종일 운하 근처에서만 시간을 보내볼 생각입니다. 그곳의 공기와 빛, 소리가 제 마음을 다시 한번 따뜻하게 채워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