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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역사와 평화를 떠올리지만, 저는 그곳에서 경험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맛’이었습니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그 도시의 뿌리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며든 음식들이었죠. 히로시마에서 먹었던 오코노미야키와 겨울철 굴요리, 그리고 골목골목 숨어 있는 전통 맛집들은 지금도 제 기억 속에 살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직접 맛보고 느낀 히로시마의 미식 여행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히로시마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의 특별한 맛

히로시마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오코노미야키 전문점들입니다. 흔히 일본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히로시마식은 확실히 다릅니다. 오사카 오코노미야키가 ‘섞어서 굽는 스타일’이라면,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는 재료를 층층이 쌓아 올려 만드는 방식이죠. 처음 마주했을 때는 ‘이게 다 부서지지 않고 제대로 익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눈앞에서 철판 위에서 쌓여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집중하게 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면이 들어간다는 점이었어요. 얇은 밀가루 반죽 위에 양배추, 숙주, 돼지고기, 계란을 올린 후, 마지막에 소바나 우동 면을 넣어주는 겁니다.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하고, 그 위에 히로시마 특유의 달콤짭짤한 소스를 듬뿍 바르면 그야말로 중독적인 맛이 됩니다. 제가 갔던 오코노미무라라는 건물은 층마다 오코노미야키 집이 줄지어 있어서 어디를 들어가도 맛있었지만, 특히 나이 지긋하신 주인아주머니가 해주신 집은 더 정겨웠습니다. 철판 앞에 앉아 “소바로 할래? 우동으로 할래?”라고 물으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해요.

무엇보다 그곳에서 느낀 건 ‘음식도 지역의 자존심’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손님에게 히로시마식과 오사카식을 비교해 묻는 주인의 눈빛에는 은근한 자신감이 묻어나 있었고, 실제로 그 맛은 다른 지역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겨울 히로시마의 별미, 신선한 굴요리

히로시마 미식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굴입니다. 특히 겨울철에 히로시마를 찾았다면,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싱싱한 굴요리를 꼭 경험해봐야 합니다. 히로시마는 일본 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굴로 유명한 지역인데, 현지에서 먹는 그 신선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으로 굴을 맛본 건 미야지마 근처의 작은 가게였습니다. 숯불 위에 굴을 올려 구워 먹는데, 껍질이 바삭 소리를 내며 열리면 하얀 살이 드러났습니다. 그 순간 바닷내음과 고소한 향이 동시에 퍼지면서 입 안 가득 바다를 담은 듯한 맛이 퍼졌죠. 일본에서 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저는 그 말이 왜 나왔는지 단번에 이해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굴튀김을 먹어봤는데,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한 식감이 환상적이었습니다. 튀김옷 안에서 육즙처럼 흘러나오는 굴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저는 그야말로 ‘굴의 진수를 만났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고 느꼈습니다. 굴 덮밥, 굴 미소국 같은 다양한 변주 요리도 맛볼 수 있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조리해도 신선한 굴 자체의 힘이 살아 있었죠.

히로시마 사람들은 굴을 단순한 해산물이 아니라, 겨울을 대표하는 선물처럼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식탁 위에 굴이 오르면 다 같이 웃으며 따뜻한 술을 곁들이고,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음식이 사람들을 연결하는 힘을 새삼 느꼈습니다.

골목 속 전통 맛집에서의 따뜻한 시간

히로시마의 매력은 대형 식당이나 유명한 음식만이 아닙니다. 골목골목 숨어 있는 작은 맛집들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주곤 하죠. 제가 우연히 들어갔던 한 이자카야는 메뉴판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주인 아저씨가 직접 추천해준 제철 안주와 따뜻한 사케 한 잔이 여행의 피로를 단번에 풀어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먹은 건 단순한 조림 요리와 작은 생선구이였는데, 화려하진 않아도 손맛이 묻어나는 진짜 ‘집밥’ 같았습니다.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지역 주민은 제가 여행자라는 걸 눈치채고 “히로시마 어때?” 하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 따뜻한 관심과 소소한 대화는 음식 그 자체보다 더 진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결국 여행에서 맛이라는 건 단순히 ‘무엇을 먹었다’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먹었는가’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죠.

히로시마 미식여행은 단순히 배부른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오코노미야키의 층층이 쌓인 맛 속에서 사람들의 자부심을 느꼈고, 겨울 굴의 풍미 속에서 바다와 계절의 선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작은 이자카야에서의 한 끼는 음식이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연결해주는지를 다시 알려주었죠. 만약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면, 꼭 유명한 음식만이 아니라 골목 속 작은 맛집에도 발걸음을 옮겨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야말로 진짜 히로시마의 맛과 마음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