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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 나는 ‘츠텐카쿠’가 단순한 오래된 전망탑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사카성처럼 웅장하지도 않고, 우메다 스카이빌딩처럼 현대적이지도 않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츠텐카쿠는 그런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줬다. 그곳은 단지 오르내리는 전망대가 아니라, 오사카라는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껴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같은 곳이었다.
츠텐카쿠가 품은 ‘낡음’의 가치
츠텐카쿠는 일본어로 ‘하늘로 뻗은 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름만 보면 굉장히 위풍당당할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탑 자체는 아담하고, 주변 풍경과 묘하게 어울린다. 이곳은 처음엔 1912년에 세워졌고, 이후 화재로 붕괴된 뒤 1956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됐다. 그러니까 지금의 츠텐카쿠는 ‘복원된 과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탑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오래됐기 때문이 아니다. 도시가 변화하고 고층 건물이 속속 들어서는 와중에도, 이 오래된 철탑은 스스로의 시간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마치 사람들에게 ‘이 도시의 원래 얼굴’을 기억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정체성은 탑 그 자체뿐 아니라, 그 아래에 흐르는 ‘신세카이(新世界)’라는 거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신세카이 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탑
츠텐카쿠의 진짜 매력은 탑 그 자체보다 그 주변 풍경과 함께할 때 더 진하게 드러난다. 탑 아래로 이어지는 신세카이 거리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오래된 간판들, 70~80년대 분위기의 식당, 옛 일본 드라마에 나올 법한 골목과 가게들이 츠텐카쿠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 거리에서는 관광객만큼이나 지역 주민들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정장을 입은 사람이 거의 없고,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맥주를 한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만큼 이곳은 ‘전시된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삶의 일부다.
나는 한 번은 ‘잔잔코(じゃんじゃん横丁)’ 골목에서 오래된 오코노미야키 가게에 들어간 적이 있다. 할머니가 직접 구워주는 그 음식에는 특별한 재료가 없었지만, 그 맛만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츠텐카쿠라는 이름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만든 풍경, 그리고 그들이 지켜낸 리듬이 바로 이곳의 핵심이다.
전망대에서 본 오사카의 얼굴
물론 츠텐카쿠 타워의 전망대에 올라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최신식 스카이뷰 엘리베이터와 비교하면 느리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는 다소 촌스럽지만, 그 감성 자체가 오히려 정겹다. 천천히 올라가면서 밖의 풍경이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은 마치 옛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을 준다.
전망대에 오르면 오사카의 남부 지역이 한눈에 펼쳐진다. 멀리에는 아베노 하루카스의 유리 외벽이 반짝이고, 가까이에는 신세카이 거리의 지붕과 골목들이 조밀하게 엮여 있다. 높은 빌딩과 낮은 주택이 혼재된 이 풍경은 오사카라는 도시의 ‘지금’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츠텐카쿠 전망대 안에 있는 행운의 신 ‘비리켄’이다. 발을 쓰다듬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조용히 기도를 올린다. 나는 그걸 보며 문득,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여전히 ‘기원’과 ‘믿음’이 깃든 장소라는 걸 다시 느꼈다.
속도보다 기억이 남는 여행지
요즘 여행은 빠르고 효율적이다. 지도 앱은 최적의 루트를 알려주고, 블로그는 ‘OO시에는 여기 가세요’ 식의 루틴을 제시한다. 그런 여행에서 츠텐카쿠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엔 이곳은 너무 느리고, 너무 조용하며, 너무 오래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점이야말로 츠텐카쿠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이다. 바쁘게 소비되지 않고, 한 번쯤 멈추게 만들며,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게 만든다. 나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보았다’기보다, 무언가를 ‘느꼈다’는 감정을 안고 나왔다. 그건 보기 드문 경험이었다.
만약 오사카에 가게 된다면, 츠텐카쿠를 단지 ‘하나의 탑’으로 보지 말고, 그 탑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삶, 거리의 분위기, 음식의 냄새까지 함께 느껴보기를 권한다. 그렇게 이곳은 더 이상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오사카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