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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중부의 항구 도시, 트론헤임(Trondheim). 저는 처음 이 도시의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뭔가 낭만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슬로나 베르겐처럼 유명한 대도시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이 제 마음을 더 끌었습니다. 실제로 트론헤임에 도착했을 때, 제 첫인상은 ‘잔잔하다’였습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결코 거칠지 않았고, 거리는 조용했지만 살아 있는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북유럽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트론헤임
트론헤임

니다로스 대성당 앞에서 느낀 경외감

트론헤임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단연 니다로스 대성당(Nidarosdomen)이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 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은, 멀리서도 우뚝 솟은 첨탑과 섬세한 조각들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저는 성당 앞에 섰을 때, 잠시 숨이 막히는 듯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회색빛 석조 건물은 차가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백 개의 섬세한 조각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성자들의 얼굴 하나하나, 천사들의 날개, 그리고 고딕 양식 특유의 뾰족한 문양까지. 그 앞에서 저는 한참 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는 한층 더 엄숙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고요한 홀을 붉고 푸른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깊은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가 천천히 공간을 채웠습니다. 저는 의자에 앉아 그 빛과 소리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순간 ‘이 도시의 중심은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람들의 기도가 쌓여온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니달벤 강가에서의 산책

트론헤임의 또 다른 매력은 니달벤(Nidelva) 강가입니다. 성당에서 조금만 걸으면 강을 따라 알록달록한 창고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 풍경은 제가 상상한 북유럽의 이미지 그대로였습니다. 강 위에 비친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건물들이 물결에 따라 흔들리며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리 위에 서서 한참이나 그 풍경을 바라봤습니다. 겨울이라 공기가 차가웠지만, 그 맑은 차가움이 오히려 마음을 맑게 해주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니 현지인들이 강가에서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특히 오후 늦게 해가 지기 시작하면, 건물들이 금빛으로 물들며 그림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저는 그 순간 핫초코를 손에 들고 강가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습니다. 입김이 흩날리는 공기 속에서, ‘이곳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북유럽의 풍경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작은 카페에서 맛본 일상

트론헤임의 매력은 웅장한 건축물이나 자연경관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따뜻함이 더 큰 감동을 줍니다. 어느 날 오후, 저는 올드타운 골목에서 아담한 카페를 발견했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평범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 테이블과 촛불, 그리고 은은한 커피 향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따뜻한 시나몬 롤과 라떼를 주문했습니다.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두꺼운 코트를 입고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을 보면서도 카페 안은 아늑했고, 주변 테이블에서는 친구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제가 여행자임을 눈치채고, 어디서 왔냐고 물으셨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활짝 웃으시며 “Trondheim is small, but it has a big heart.”라는 말을 건네셨습니다. 저는 그 말이 이 도시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지만 따뜻하고, 고요하지만 결코 비어 있지 않은 도시. 바로 그게 트론헤임의 매력이었습니다.

트론헤임이 남긴 울림

트론헤임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제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니다로스 대성당에서의 경외감, 강가에서의 고요한 평화, 그리고 작은 카페에서 만난 따뜻한 미소까지. 이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따뜻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르웨이를 떠올리면 피오르드나 오슬로의 화려한 풍경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누군가 노르웨이에서 꼭 가봐야 할 도시를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트론헤임을 추천할 겁니다. 이곳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는 도시입니다. 언젠가 다시 북유럽을 여행하게 된다면, 저는 반드시 트론헤임으로 돌아와 그 강가를 다시 걸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차가운 공기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