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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 바리(Bari)는 흔히 ‘남부로 가는 관문’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저에겐 단순히 거쳐 가는 곳이 아닌, 따뜻한 기억과 소박한 감동을 안겨준 도시로 남아 있습니다. 처음 바리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버스 창밖으로 보였던 건, 끝없이 이어진 올리브 나무 밭과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집들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미 저는 이 도시가 제게 어떤 특별한 인상을 남길 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바리
바리

바리 베키아, 살아 숨 쉬는 골목의 매력

바리를 제대로 느끼려면 먼저 ‘바리 베키아(Bari Vecchia)’라 불리는 구시가지를 걸어야 합니다. 좁은 골목마다 세월이 묻어 있고, 빨래가 펄럭이는 창문 아래에서는 할머니들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골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만났습니다. 어느 오후, 두 명의 할머니가 작은 테이블 위에 밀가루 반죽을 올려놓고 손으로 ‘오레키에테(Orecchiette)’라는 수제 파스타를 빚고 있었습니다. 관광객이 지나가자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Vuoi provare? (해볼래?)”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조심스레 손을 뻗어 따라 해봤지만, 제 파스타는 모양이 엉망이었죠. 그때 할머니는 크게 웃으며 “연습하면 괜찮아져!”라고 하셨습니다. 그 따뜻한 웃음이 바리 골목의 공기와 어울려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산 니콜라 대성당 앞에서 느낀 고요함

바리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는 ‘산 니콜라 대성당(Basilica di San Nicola)’입니다. 이곳은 산타클로스 전설의 기원이 된 성 니콜라스의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전 세계에서 순례자들이 찾아옵니다. 저는 아침 일찍 성당을 찾았는데, 아직 관광객이 많지 않아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성당 내부는 소박하면서도 중후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하얀 석조 벽과 낮은 천장은 오래된 신앙의 무게를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제가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을 때, 들려온 건 멀리서 속삭이는 듯한 기도 소리였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잔잔해졌고, 바리에 온 이유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제 자신과의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드리아해와 함께한 바리의 저녁

바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닷가 산책이었습니다. 저녁 무렵, 바리의 해변 산책로인 ‘룽고마레(Lungomare)’를 걸었습니다. 석양빛이 바다 위에 부드럽게 퍼지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면서 도시가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연인들은 벤치에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대 있었고, 아이들은 바다를 향해 돌을 던지며 웃고 있었습니다. 저도 벤치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피자 한 조각과 현지 맥주를 즐겼습니다. 바리의 피자는 화려하지 않지만, 얇고 바삭한 도우에 담백한 토마토 소스가 어우러져 담백한 맛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의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바람과 빛, 그리고 소박한 음식 속에 있구나.’

바리가 남긴 여운

바리에서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제게는 아주 긴 울림을 남겼습니다. 바리 베키아 골목에서 만난 따뜻한 웃음, 성당에서의 고요한 순간, 바닷가에서 맞은 저녁의 바람. 이 모든 게 모여 제 마음속에 한 장의 그림처럼 남아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바리 베키아를 걸었습니다. 아이들이 좁은 골목을 뛰어다니고, 집집마다 창문에는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습니다. 특별히 꾸민 것도 아닌데, 그 일상적인 풍경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바리를 ‘겉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속으로 단단한 도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나 피렌체를 떠올리지만, 진짜 이탈리아의 삶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면 바리에 꼭 와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다시 남부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바리로 향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그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골목을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