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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발트해 연안의 도시라는 정보 외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죠. 하지만 직접 발을 들여놓은 리가는, 그 어떤 유명 도시보다도 따뜻하고 매력적인 풍경을 품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돌길, 세월을 간직한 건물들, 그리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 리가는 낯설면서도 묘하게 친근한 곳이었습니다.

리가
리가

올드타운에서 만난 시간의 흔적

리가 여행의 시작은 당연히 올드타운이었습니다. 좁은 돌길을 따라 걷다 보면 중세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붉은 지붕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벽돌 건물들은 마치 오래된 동화책 속 풍경 같았죠. 특히 세 자매의 집(Three Brothers) 앞에 섰을 때, 저는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라트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이라는데, 저마다 다른 세월과 이야기를 품고 서 있는 모습이 묘하게 인간적이었거든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담백한 아름다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광장에 이르자 노천카페들이 모여 있었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거리 음악가의 선율이 공기를 채웠습니다.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결국 이런 순간들이 아닐까요? 이름 모를 음악과 차가운 바람, 그리고 그 순간의 풍경이 모두 합쳐져 ‘아, 내가 지금 리가에 있구나’ 하는 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리가 대성당과 강가의 풍경

올드타운을 걷다 보면 어느새 리가 대성당에 닿게 됩니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큰 성당이라는데, 겉모습보다 안에 들어섰을 때의 울림이 더 컸습니다. 천장까지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했고, 고개를 들어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니 한순간에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성당을 나와 강 쪽으로 걷다 보면, 다우가바 강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변 산책로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들, 손을 잡고 산책하는 연인들, 그리고 강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잠시 멈춰 앉아, 차갑지만 청명한 공기를 마시며 눈앞의 도시를 바라봤습니다. 거대한 수도이지만, 리가의 일상은 소박하고 담백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리가 중앙시장, 사람들의 삶이 숨 쉬는 곳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 중 하나는 리가 중앙시장이었습니다. 옛 비행선 격납고를 개조해 만든 시장이라는데,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활기가 넘쳤습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갖가지 빵과 치즈, 그리고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빵집에서 막 구워낸 라트비아식 흑빵을 사 먹었는데, 구수하면서도 씹을수록 깊은 맛이 퍼졌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게 진짜 여행의 맛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시장 한구석에서 맛보는 소박한 빵 한 조각이 오히려 여행의 기억을 더 오래 남겨 주는 법이니까요. 시장 안에서 만난 상인들은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지만, 손짓과 웃음으로 충분히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제가 흑빵을 사고 거스름돈을 받는 순간, 상인은 손을 꼭 잡아 주며 “라트비아, 웰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따뜻한 순간 덕분에 리가는 더 이상 낯선 도시가 아니라, 마음이 닿는 곳이 되었습니다.

리가가 남긴 울림

리가에서 보낸 시간은 화려함보다는 잔잔한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올드타운의 돌길을 걸으며 들었던 음악, 성당 안을 가득 채우던 오르간 소리, 시장에서 나눴던 따뜻한 눈빛들. 이 모든 순간이 모여 리가라는 도시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강가를 다시 걸으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왜 여행을 계속하는 걸까?” 아마 이런 도시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세상 어딘가에서 내 삶과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나도 잠시 다른 호흡을 해보는 것. 리가는 제게 그런 여행의 본질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준 도시였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낯설지만 따뜻한. 그래서 리가는 제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발트해를 따라 여행을 떠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다시 이 도시로 돌아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