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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여행을 계획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테네를 먼저 떠올리지만, 저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에게해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도시, 테살로니키(Thessaloniki). 그곳은 여행지라기보다 삶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고대와 현대가 한눈에 담기고, 길모퉁이를 돌면 카페와 성당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테살로니키는 단순히 볼거리를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듣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하얀 탑 앞에서 맞이한 바닷바람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하얀 탑(White Tower)’이었습니다. 테살로니키의 상징 같은 건축물인데, 사실 탑 자체만 보면 단순한 원형 석조 건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서 있는 순간, 시원한 바닷바람과 탑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이 풍경을 완성시켰습니다. 현지 학생들은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고, 연인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저도 탑 근처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다 냄새를 맡으며 앉았습니다. 지중해의 바람이 제 얼굴을 스치고,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낯선 도시에서의 긴장이 풀리며 ‘아, 나는 지금 그리스에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났습니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거리
테살로니키의 거리를 걷다 보면, 정말 독특한 장면을 자주 마주합니다. 한쪽에는 현대적인 카페와 패션 매장이 늘어서 있는데, 그 맞은편에는 1,500년 된 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툰다(Rotunda)와 갈레리우스 개선문은 도시 중심에 있어 누구나 쉽게 지나치며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앞에 서서 오래된 벽돌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껴보았습니다. 수 세기를 견딘 건물 앞에 서니, 마치 제가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반대로 바로 옆의 카페에서는 젊은이들이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고대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나란히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테살로니키의 매력은 바로 이런 대비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바닷가 산책과 현지인의 삶
저녁 무렵, 테살로니키의 바닷가 산책로에 나섰습니다. 해가 지면서 하늘은 분홍빛으로 물들고, 바다는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달리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현지인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아이들. 그 속에 섞여 걷고 있자니, 마치 제가 잠시 이 도시의 한 부분이 된 듯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작은 길거리 카페에서 마셨던 ‘프라페’였습니다. 그리스식 아이스커피인데, 차갑고 달콤한 맛이 여름 저녁 공기와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카페 주인은 제가 외국인인 걸 금방 눈치채고, “이곳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네, 여기는 정말 따뜻한 도시네요”라고 답했습니다. 그 순간 작은 대화가 저를 더 깊이 테살로니키와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테살로니키가 남긴 울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테살로니키가 단순히 ‘둘러볼 곳’이 아니라 ‘살아보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대 유적이 일상 속에 녹아 있고, 사람들의 삶은 바다와 햇살 속에서 여유롭게 흘러갑니다. 아테네처럼 화려한 고대 유적의 웅장함은 없을지 몰라도, 테살로니키에는 사람과 풍경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얀 탑 앞의 바닷바람, 오래된 성당의 벽돌, 저녁 산책로의 웃음소리.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그리스에 간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 도시로 향할 겁니다. 테살로니키는 제게 ‘살아 있는 그리스의 얼굴’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