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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북쪽으로 두 시간을 달리면, 창밖의 풍경이 서서히 달라진다. 높은 빌딩 대신 낮은 지붕의 집들이 늘어서고, 멀리 눈 덮인 산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후쿠시마현의 중심 도시, 고리야마다. 처음 내린 역 앞은 의외로 활기찼다. 버스가 오가고, 출근길의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그리고 빵 굽는 냄새가 골목 사이로 퍼져 나왔다. 하지만 도시의 첫인상이 바쁘게 느껴지기보다 따뜻하게 다가왔던 건, 그 속도 때문이었다. 고리야마의 시간은 확실히 도쿄보다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고리야마
고리야마

고리야마역에서 시작된 하루

고리야마역은 생각보다 크고 현대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정취가 남아 있었다. 역 구내 상점에서는 후쿠시마산 복숭아를 파는 작은 코너가 있었고, 지역 공예품을 진열한 가게에서는 손으로 직접 만든 나무 젓가락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사서 역 앞 광장에 앉았다. 주변에는 출근 전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 여행 가방을 끌며 이동하는 사람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평화로워 보였다. 바쁜 도쿄 생활 속에서 잊고 있던 ‘일상의 온기’가 이곳엔 살아 있었다.

광장 한쪽에서는 지역 농산물 직거래 장이 열리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어제 밭에서 캔 거예요. 하나 맛보세요.” 그렇게 건네받은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넣자, 단맛이 터졌다. 도시의 이름이 낯설었지만, 사람들의 미소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이 도시가 단순한 교통 중심지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공동체의 도시라는 걸 느꼈다.

고리야마의 자연, 그리고 고요함 속의 사색

점심 무렵, 나는 고리야마 북쪽에 있는 ‘개천공원(開成山公園)’으로 향했다. 이곳은 고리야마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 중 하나라고 했다. 공원 입구를 지나자 벚꽃이 피어 있었다. 이미 만개 시기를 지나 꽃잎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눈처럼 흩날렸다. 강가를 따라 걷다 보니, 벤치마다 사람들이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 중 한 중년 부부가 내게 자리를 내어주며 말했다. “여긴 봄마다 꼭 와요.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요.” 그 말이 유난히 따뜻하게 들렸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도시, 그 말의 의미가 조금씩 피부로 느껴졌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한참을 하늘만 바라봤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여행을 다니며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도시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생동감이 있었다. 마치 한 편의 느린 음악처럼, 고리야마의 하루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도시의 중심에서도 바람이 이렇게 부드럽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곳 사람들의 마음이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온기가 만든 도시

저녁이 가까워오자, 나는 고리야마역 근처의 오래된 이자카야 골목으로 향했다. 가로등 불빛이 켜지고, 가게마다 문 앞에는 작은 등불이 걸려 있었다. 좁은 골목 안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구운 생선 냄새가 마음을 편하게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안은 따뜻했고, 카운터 너머로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인사했다. “처음 오셨죠? 추천 메뉴는 사바(고등어) 구이입니다.” 그 말에 이끌려 주문을 했다. 불 위에서 고등어가 익는 동안 아저씨는 내게 고리야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긴 전쟁 후에도 다시 일어선 도시예요. 다들 열심히 일하면서도, 서로 돕는 걸 잊지 않았죠. 그래서 고리야마 사람들은 항상 ‘함께 산다’는 말을 해요.” 그 말이 참 인상 깊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따뜻한 사케를 한 모금 마셨다. 알코올의 열기보다도, 사람의 말이 마음을 더 데웠다. 여행지에서 이런 대화 하나가 하루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놓는다는 걸, 다시 느꼈다.

가게를 나서니 밤공기가 차가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따뜻했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퇴근 후 친구들과 맥주를 나누는 회사원들, 버스 정류장에서 서로 어깨를 기대는 연인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부부의 천천한 발걸음. 그 모든 장면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도시의 시간은 사람의 속도에 따라 흐른다.’ 고리야마에서는 그 말이 현실이었다.

고리야마에서 배운 ‘느림의 가치’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다시 개천공원을 찾았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거의 없었고, 연못 위로 안개가 가볍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도쿄나 오사카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이렇게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도시가 더 아름답다고. 고리야마의 매력은 ‘조용함’이 아니라 ‘조화로움’이었다. 사람, 자연, 그리고 시간—all이 서로를 존중하며 흘러가는 공간.

역으로 돌아가는 길, 시장 앞에서 전날 만난 아주머니가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돌아가요? 다음엔 여름에 와요. 복숭아가 진짜 맛있어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의 끝에서 이런 인사를 받으면, 마음속에 작은 불빛이 켜진다. 떠나는 아쉬움보다도,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고리야마는 내게 그런 도시였다. 빠르게 달리는 세상 속에서도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살아가는 도시.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나’답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무료 이미지 참고: https://pixabay.com/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