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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 이름부터 어딘가 낯설고 이국적이었지만, 실제로 도착해 보니 도시의 공기 자체가 독특했습니다. 조지아의 수도이자 코카서스의 관문인 이곳은,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길목답게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좁은 골목길마다 서양식 발코니와 동양적 장식이 뒤섞여 있었고, 오래된 성당과 모스크, 그리고 현대적인 카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걸음을 옮기는 순간, 저는 ‘이 도시에는 이야기가 많겠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트빌리시
트빌리시

구시가지 골목에서 만난 시간의 흔적

트빌리시 여행의 첫 시작은 구시가지였습니다. 낡았지만 따뜻한 색감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발코니에는 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벽돌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집들도 많았는데, 그 흔적조차도 마치 이 도시가 걸어온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니 작은 와인 바가 눈에 띄었습니다. 들어가니 주인장이 환하게 웃으며 “Welcome to Georgia!”라고 맞아주었습니다. 조지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의 고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말이 왜 사실인지 와인을 한 모금 마셔보니 알겠더군요. 달콤하면서도 깊은 향, 그리고 와인과 함께 내어주신 따뜻한 빵과 치즈까지. 단순한 한 끼였지만, 낯선 여행자에게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리칼라 요새에서 바라본 도시

트빌리시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는 나리칼라 요새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 위에 오르면 도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푸른 쿠라 강이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고, 강 양쪽으로 펼쳐진 지붕들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맞으며 도시를 내려다보는데, 이곳이 왜 오랫동안 전략적 요충지였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실크로드의 길목, 수많은 민족과 문화가 오가던 길. 그 복잡한 역사와 다양한 흔적들이 지금의 트빌리시를 만들었겠죠.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도시의 소음마저도 하나의 음악처럼 들렸습니다. 제가 그 순간 느낀 건 ‘이곳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수백 년의 시간 자체가 모여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황홀했던 유황 온천 체험

트빌리시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온천입니다. 도시 이름조차도 ‘따뜻하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죠. 구시가지 한쪽에 자리한 유황 온천 지구는 겉에서 보면 반구형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독특한 풍경이었습니다. 저는 작은 온천탕에 들어가 유황 향이 가득한 물에 몸을 담갔습니다. 따뜻한 물에 잠기자 긴장이 풀리면서, 낯선 도시에서의 낯설음도 함께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물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김, 벽돌 돔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빛줄기, 그리고 물소리까지. 모든 게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여행 중에 몸과 마음을 동시에 녹여주는 경험은 흔치 않은데, 트빌리시 온천은 그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트빌리시가 남긴 여운

트빌리시는 화려하게 치장된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낡고 거칠게 남은 흔적들이 많았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골목길의 와인 향, 요새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 따뜻한 온천에서의 안도감. 모든 것이 모여 이 도시만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쿠라 강변을 걸었습니다. 강물 위로 불빛이 반짝이고, 다리 위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가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따뜻하게 마음속에 스며들었습니다. 트빌리시는 제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시간과 문화가 어우러져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남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서, 이번엔 더 오래 머물며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