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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벤그라드(Drvengrad), 또는 쿠스타우라시(Küstendorf)는 세르비아 서부 자드르 산맥(Zlatibor Mountains) 자락에 자리한 독특한 목조 마을로, 세계적인 영화감독 에밀 쿠스투리차(Emir Kusturica)가 직접 설계하고 만든 예술 공동체입니다. 이름 그대로 '목재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영화, 건축, 음악, 철학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실험 공간으로 전 세계 예술가들과 여행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감독이 설계한 예술 공간, 목재로 지어진 마을
드르벤그라드는 2000년대 초,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이 자신의 영화 ‘라이프 이즈 어 미라클’(Life is a Miracle)의 촬영을 위해 세운 세트장이 그 기원이 됩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그는 이 공간을 예술가들과 철학자, 여행자들이 머무르며 소통할 수 있는 마을로 바꾸었고, 현재의 드르벤그라드가 완성되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건물은 세르비아 전통 목조 건축 양식에 따라 지어졌으며, 각각의 건물에는 특색 있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마을 중심의 광장에는 쿠스투리차가 존경하는 인물들—니콜라 테슬라, 체 게바라, 페데리코 펠리니, 디에고 마라도나—의 이름이 붙은 거리와 동상이 있으며, 마치 예술과 혁명의 역사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숙소, 서점, 영화관, 미술관, 성당, 카페, 전통 음식점까지 작은 마을 안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며, 전통과 현대, 유머와 진지함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특히 ‘스탠리 큐브릭 영화관’은 드르벤그라드에서 상영되는 모든 작품이 감독의 철학과 미학을 반영한 큐레이션을 통해 선정됩니다.
영화의 정신을 기리는 문화 축제의 장
드르벤그라드의 가장 대표적인 행사는 매년 1월에 열리는 ‘쿠스타도르(Kustendorf) 국제 영화 & 음악 페스티벌’입니다. 이 축제는 상업 영화보다 예술성과 실험성이 뛰어난 세계 각국의 독립영화와 신진 감독들을 조명하며, 초청받은 감독과 배우들이 직접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됩니다.
쿠스타도르는 칸, 베를린, 베니스 같은 대형 영화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와 관객을 연결합니다. 경쟁이 아닌 교류와 성장에 초점을 맞춘 이 행사는 젊은 예술가들의 무대가 되어왔으며, 에밀 쿠스투리차 자신도 적극적으로 큐레이션과 질의응답 세션에 참여합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축제 기간에는 발칸 음악 공연, 클래식 콘서트, 시 낭송, 다큐멘터리 상영, 철학 강연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행사가 열리며,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플랫폼으로 변모합니다. 특히 겨울 눈 덮인 풍경 속에서 열리는 축제는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발칸의 전통과 자연 속에서 즐기는 슬로우 트래블
드르벤그라드는 단순히 예술적 테마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해발 약 800미터에 위치한 마을은 주변이 자드르 산맥 국립공원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계절 내내 산책, 트레킹, 겨울 스포츠 등 자연 기반 활동이 가능합니다.
인근에는 목조 열차 '샤르간 에이트(Šargan Eight)'가 운행되는 협곡 철도가 있으며, 이 역사적인 협궤 열차는 드르벤그라드에서 출발해 아름다운 산악 지형을 따라 굽이굽이 달리며 과거 발칸 지역의 철도 여행을 재현합니다. 영화 같은 풍경 속에서의 열차 여행은 드르벤그라드 방문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 코스입니다.
또한 이곳의 숙소와 식당은 대부분 슬로우 푸드 철학을 바탕으로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전통 요리를 선보이며, 여행자들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세르비아 고유의 식문화와 환대를 경험하게 됩니다. 밤에는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현지 와인과 함께 조용한 음악을 듣거나, 작은 영화관에서 고전 영화를 감상하는 여유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르벤그라드(Drvengrad)는 영화감독의 상상이 현실이 된 마을입니다. 예술과 철학, 자연과 사람, 전통과 실험이 한데 어우러진 이 공간은 여행자에게 단순한 장소 이상의 영감을 전해줍니다. 세르비아를 넘어 발칸 전체를 대표하는 가장 독창적인 마을, 드르벤그라드에서 당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