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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야마시는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어딘가 평온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습니다. 오사카나 교토처럼 화려한 명소가 넘쳐나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북적임이 덜한 만큼, 도시의 숨결과 바람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와카야마에 도착했을 때,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바다 냄새와 오래된 성의 위엄, 그리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와카야마성에서 느낀 시간의 무게
와카야마 여행의 첫걸음은 역시 와카야마성이었습니다. 성 입구로 향하는 길은 고즈넉한 나무들과 돌담이 이어져 있었고, 걷는 내내 발걸음이 절로 느려졌습니다. 마치 오래된 시간의 벽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요. 성의 하얀 벽과 검은 기와는 멀리서 보아도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천수각에 오르니 와카야마 시내가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바다와 도시가 맞닿아 있는 풍경은 다른 일본 성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전해줬습니다. 교토의 성들이 산과 어우러져 고요한 느낌이라면, 와카야마성은 푸른 바다와 함께 열려 있는 듯한 자유로움을 안겨줬습니다. 성 내부에는 옛 무기와 갑옷, 와카야마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품들이 있었는데, 그 앞에 서 있을 때마다 "이 성을 지키던 사람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 풍경을 바라봤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슈 지역의 맛, 와카야마 라멘과 과일
성에서 내려와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니,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작은 상점마다 과일과 건어물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특히 와카야마 하면 유명한 게 감귤이죠. 가게 앞에서 시식으로 내어준 귤 한 조각은 정말 달콤했습니다. 입 안에 퍼지는 상큼한 단맛이 피로를 싹 씻어주는 듯했어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건 와카야마 라멘이었습니다. 돼지뼈와 간장이 어우러진 진한 국물에 쫄깃한 면발, 그리고 얇게 썬 차슈까지.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오사카 라멘과는 다른 깊고 묵직한 맛이 입 안을 감쌌습니다. 라멘집에서 마주한 현지인 아저씨는 "여기 오면 꼭 이 라멘 먹어야 한다"며 웃어 주셨는데, 그 따뜻한 눈빛 덕분에 라멘이 더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바다가 있는 도시, 그리고 느긋한 일상
와카야마의 또 다른 매력은 바다였습니다. 시내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잔잔한 파도가 밀려드는 해안가가 나타났습니다. 관광객이 북적이지 않는 바닷가에서 혼자 앉아 있자니, 파도 소리가 마치 제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습니다. 큰 바다 앞에서는 오히려 제 고민들이 사소해 보였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와카야마는 온천으로도 유명합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노천탕에 앉아 있으면, 따뜻한 물과 함께 하루의 피로가 풀리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단절된 듯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작은 료칸의 주인은, “와카야마는 바다와 산, 그리고 조용한 생활이 어우러진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꼭 이 도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듯했습니다.
와카야마가 남긴 따뜻한 울림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와카야마가 다른 간사이 지역에 비해 덜 알려져 있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다녀오니,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서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의 위엄, 시장의 활기, 바다의 고요함, 그리고 현지인들의 친절한 미소까지.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와카야마는 제게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며 "다시 이 도시를 찾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답은 아마 ‘그렇다’일 겁니다. 북적임이 덜하고, 도시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와카야마는 제가 마음이 지쳤을 때 다시 찾고 싶은 안식처 같은 곳이 되었으니까요. 여행지로서의 특별함이 아니라, 사람 사는 도시로서의 따뜻함이 오래 남는 곳. 와카야마시는 바로 그런 매력을 지닌 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