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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이 여행하기

비에이를 처음 찾은 건 여름이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무더운 한국을 피해 시원한 나라로 찾아보던중 여름의 삿포로도 낭만있다는 생각에 삿포로로 향했다. 홋카이도의 여름은 서울의 무더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습기 없는 시원한 바람, 끝없이 이어지는 언덕,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초록 물결. 비에이 역에 내렸을 때, 마치 누군가 풍경화 속으로 나를 초대해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카메라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솔직히 사진으로는 절대 이 감정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언덕 위에서 맞은 바람

비에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파노라마 로드와 패치워크 로드다. 그날은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하얀 구름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멀리 보이는 산맥이 희미하게 푸른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언덕 위에 서자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그 바람 속에 풀 냄새와 꽃향기가 섞여 들어왔다. 함께 간 친구는 “이건 진짜 현실이 아니야”라며 웃었다. 나도 모르게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공기였다.

길가에는 라벤더가 한창 피어 있었고, 농가 옆에는 노란 밀밭이 출렁였다. 그 풍경이 너무 완벽해서, 잠시라도 눈을 떼기 아까웠다. 여름 비에이의 매력은 바로 이런 ‘색의 층’이었다. 초록, 노랑, 보라, 파랑이 겹겹이 쌓여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자전거로 느낀 자유

비에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자전거 투어였다. 마을 입구에서 전기자전거를 빌려 언덕길을 오르내렸다. 경사가 제법 있었지만, 여유롭게 페달을 밟으며 달리는 그 순간만큼은 마치 세상에 나와 친구밖에 없는 듯한 기분이었다. 길가에 멈춰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중, 지나가던 현지 농부 아저씨가 “오늘 날씨가 정말 최고지?”라며 미소를 지었다. 짧은 인사였지만, 그 순간 이곳 사람들의 여유로운 마음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점심은 작은 카페에서 먹은 토마토 파스타였다. 바로 앞 밭에서 갓 딴 토마토로 만든 소스라 그런지, 달콤하면서도 상큼했다. 창밖에는 한참 동안 나비가 날아다녔고, 그 평화로운 풍경에 우리는 식사를 천천히 즐겼다.

노을이 물든 마을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비에이는 또 다른 색을 입었다. 낮에는 선명했던 초록과 노랑이 부드럽게 바뀌며, 언덕 위에 붉은빛이 번졌다. 우리는 언덕 끝에 서서 해가 지는 걸 지켜봤다. 그 순간, 바람이 살짝 차가워졌고, 어쩐지 마음도 잔잔해졌다. “이 장면을 평생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친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의 비에이는 이렇게,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마음을 물들이는 곳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가끔 바쁜 일상 속에서 눈을 감으면 그 언덕과 바람, 그리고 노을이 떠오른다. 그 기억만으로도 숨이 한결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