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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를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 중 하나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조용하고 소박한 ‘산노미야 공원’이라는 작은 공간이었다. 화려한 거리의 불빛과 분주한 관광 명소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이곳은 여행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쉼표 같은 역할을 한다. 이 글에서는 산노미야 공원의 정체성과 매력, 그리고 여행자들에게 주는 의미를 천천히 되짚어보려 한다.
도시 속의 안식처, 산노미야 공원의 분위기
산노미야 공원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일본 특유의 정갈한 조경,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나무들, 그리고 적당히 낡은 벤치가 어우러지며 이곳만의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처음 이 공원을 방문했을 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단순해서 ‘여기까지 와서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0분, 20분...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단순함이 마음속 깊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특히 벚꽃시즌에 방문 하였기 때문에 많은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하거나 친구들과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경험하며 나도 마치 현지인이 된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원 한편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주변에는 산책을 즐기는 어르신들과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주민들이 있다. 이곳에서는 ‘사진 찍을 포인트’를 찾기보다, 그저 ‘머물기’가 중심이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공원의 소리다. 차가 다니는 소음이 멀리서 배경처럼 들리면서도, 가까이선 바람 소리와 새소리, 아이들 웃음소리가 은은하게 울린다. 마치 ‘일상이 여기에 있다’는 걸 조용히 알려주는 듯하다. 번화가 근처에 이렇게 고요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여행자가 느끼는 도시의 깊이를 한층 더해준다.
관광지보다 더 기억에 남는 작은 장면들
사실 요즘 여행은 효율성이 중심이 되는 경향이 있다. ‘한 시간 안에 몇 곳을 돌 수 있을까’, ‘인스타에서 본 그 장소에서 인증샷을 찍었나’ 같은 목표들이 여행을 지배한다. 나 역시 그런 마인드로 여행을 해왔지만, 산노미야 공원에서만큼은 시계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한 벤치에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앉아 벚꽃구경 하는걸 봤다. 그분들은 한평생의 봄을 이곳에서 이 풍경을 보며 살아 오셨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며 그 장면은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들이지만, 묘하게 누군가의 인생의 한달락을 봤다는 설램을 느낄수 있었다. 어쩌면 진짜 여행이란 그런 장면 하나를 오롯이 느끼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또 한편에서는 한 가족이 어린 자식들과 함께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엄마는 그 모습을 핸드폰에 담고 있었다.
이런 평범한 장면이 유난히 인상 깊게 남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일상이 점점 그런 풍경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쉬어가는 여행자의 시선
산노미야 공원이 특별했던 건 단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볼거리가 많지 않기에 특별했다. 많은 걸 소비하고 기록하는 여행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허락해주는 장소.
이 공원은 특히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같이 앉아 이야기할 누군가가 없어도, 벤치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꽉 찬다. 책을 꺼내 읽어도 좋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아도 좋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여행자가 머물기에 좋은 공간이지만, 이곳의 진짜 주인은 지역 주민들이다. 그들의 리듬 속에 살짝 얹혀 있는 느낌. 그래서일까, 이 공원에서는 나도 잠시나마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건 관광 명소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관광이 아닌 ‘삶’을 잠깐 경험해보는 곳
여행은 종종, ‘나와 다른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론 ‘내가 있을 법한 세계’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산노미야 공원은 후자의 역할을 해준다. 우리가 사는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래서 더 깊은 공감을 자아내는 그런 공간이다.
공원이 주는 여유는 오사카라는 도시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사람들은 오사카를 먹거리 천국, 쇼핑 성지라고 말하지만, 이 공원에서는 오사카가 누군가의 삶터라는 사실이 훨씬 더 진하게 다가온다.
아침, 자전거를 타고 현지인들 처럼 산노미아공원을 즐겼다. 벚꽃길을 달려보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흐르는 강물과 떨어지는 꽃잎도 구경 했다. 그 순간을 즐기며 ‘이 도시에 다시 와도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산노미야 공원은 누군가에게는 지나치는 공원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방향을 바꿔주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요란하지 않고, 유명하지도 않지만, 오사카의 숨결을 조용히 품고 있는 그곳. 당신이 다음에 오사카를 찾게 된다면, 쇼핑이나 맛집에 앞서 이 공원을 잠시 들러보길 추천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시간. 산노미야 공원이 그런 장소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