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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제 시선을 사로잡은 건 바로 사쿠라지마였습니다. 활화산답게 여전히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매력은 다른 어떤 도시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습니다. 바다 건너에서 우뚝 솟아 있는 그 산을 보는 순간, ‘아, 여기서는 자연이 늘 일상의 일부로 함께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며칠 동안, 가고시마는 제게 자연과 사람, 그리고 느긋한 남쪽의 시간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사쿠라지마가 주는 압도적인 존재감
가고시마를 이야기할 때 사쿠라지마를 빼놓는 건 불가능합니다. 저는 가고시마 항구에서 배를 타고 사쿠라지마로 건너갔는데, 바닷바람을 맞으며 점점 가까워지는 섬의 모습이 정말 장엄했습니다. 정상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마치 도시 전체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운을 풍겼습니다. 현지인들은 “오늘은 화산재가 별로 없네”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는데, 저로서는 그 자체가 굉장히 이색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사쿠라지마에 도착해 작은 마을을 걸으며, 길가의 가로수가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화산재가 자주 쌓이다 보니 나무나 식물들이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고, 곳곳에 설치된 ‘화산재 통’이 일상의 일부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처음엔 생경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강인함과 적응력이 오히려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자연과 싸우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낸 듯했죠.
온천이 주는 위로와 여유
가고시마는 온천도 유명합니다. 특히 제가 잊지 못하는 건 이부스키의 모래찜질 온천이었습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따뜻한 모래 속에 몸을 파묻고 누워 있으면, 마치 대지의 품에 안긴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조금 낯설고 답답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온몸에 서서히 스며드는 열기가 오히려 깊은 안정을 주더군요. 모래 속에 누워 바다를 바라보는데,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진 듯했습니다.
온천 마을에 들렀을 때, 숙소 주인 할머니가 직접 삶아주신 고구마를 내주셨습니다. 달큰한 향과 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데, 단순한 간식임에도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 따뜻한 맛 덕분에 ‘이곳 사람들은 자연이 준 것을 소박하게 누리면서도, 그것을 나눌 줄 아는 여유를 알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쪽 바다가 주는 따뜻한 풍경
가고시마의 바다는 푸르고 한없이 넓었습니다. 겨울에도 다른 지역보다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고, 파도 소리도 잔잔했습니다. 저는 하루는 카노야라는 작은 해안 마을에 갔는데, 마을 앞 바다에서 노을이 질 때의 장면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하늘은 주황빛으로 물들고, 바다는 그 빛을 고스란히 비추며 빛났습니다.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먹은 흑돼지 샤부샤부도 훌륭했습니다. 얇게 썬 고기를 따뜻한 육수에 살짝 담갔다가 입에 넣는 순간, 지방이 녹아내리며 입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아, 이게 바로 가고시마의 맛이구나’ 싶었죠.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그 지역의 기후와 자연이 길러낸 산물이기에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가고시마는 제게 많은 걸 남겨주었습니다. 활화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강인함, 온천에서 느낀 위로, 그리고 바다가 주는 끝없는 여유까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저는 ‘언젠가 다시 이곳에 와서 더 오래 머물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고시마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다시 채워주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규슈에서 어디를 가야 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가고시마를 추천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