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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 데 자네이로는 나에게 ‘음악처럼 흘러가는 도시’였다.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껴졌던 건 공기 속의 리듬이었다. 브라질의 열기라는 게 단순히 기온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사람들의 웃음, 거리의 색, 바람의 흐름까지 모든 게 살아 움직였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악보 같았다. 그리고 그 악보 위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춤추고 있었다.
코파카바나 해변, 리오의 심장
리오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코파카바나 해변(Copacabana Beach)을 찾았다. 해가 뜨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은 해변을 따라 달리고 있었고, 파도소리와 함께 도시가 천천히 깨어났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으면 바람이 발끝을 간질였고,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남미의 태양은 강렬했지만, 리오의 바람은 시원했다. 그 바람 속에는 삶의 리듬이 섞여 있었다. 길거리에는 수영복 차림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 축구공을 차는 아이들, 그리고 웃으며 지나가는 노부부가 있었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들에게 리오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파도와 함께 살고, 바람과 함께 웃는 사람들. 그 자연스러움이 부러웠다. 해변 끝에 다다를 무렵, 노점에서 ‘아사이 볼’을 샀다. 진한 보라색의 아사이와 바나나, 그래놀라가 섞인 그 맛은 상상 이상으로 신선했다. 태양 아래서 먹는 차가운 아사이는 그야말로 ‘리오의 맛’이었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이 도시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리듬으로 숨 쉬는 도시, 삼바의 거리
리오의 밤은 낮보다도 뜨겁다. 해가 지면 골목마다 음악이 깔리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춤을 춘다. 나는 라파(Lapa) 지역의 한 작은 바에서 그 에너지를 처음 느꼈다. 좁은 거리 안에 기타, 드럼, 탬버린 소리가 섞이고, 사람들의 손짓이 리듬을 따라 흔들렸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음악의 박자가 익숙하지 않았고, 몸이 따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모든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몸을 맡기면 됐다. 음악이 나를 끌어당기고, 사람들의 웃음이 두려움을 녹였다. 한 브라질 여성이 내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자고 했다. 그녀의 눈빛은 장난기 가득했지만, 진심이었다. 낯선 사람과 손을 잡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웃는 순간, 언어도, 문화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우리를 감싸는 음악만이 존재했다. 그때 깨달았다. 리오의 사람들은 ‘삶’을 춤처럼 살아간다는 걸. 실수해도 괜찮고, 박자가 틀려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오의 이면,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도시
하지만 리오의 얼굴은 단순하지 않았다. 코파카바나의 햇살 아래 숨겨진 그늘도 있었다. 언덕 위의 파벨라(Favela, 빈민가)는 도시의 반대편을 보여주었다. 나는 현지 가이드와 함께 짧은 파벨라 투어를 했다. 그곳은 뉴스에서 보던 위험한 장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있었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고, 벽에는 알록달록한 그래피티가 가득했다.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건넸고, 그 미소는 따뜻했다. 물론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리오의 진짜 매력은 바로 이런 ‘양면성’이었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 도시. 그 두 가지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도시를 더 생생하게 했다. 여행을 마칠 무렵, 나는 리오가 단순히 ‘예쁜 도시’가 아니라 ‘진짜 사람 냄새 나는 곳’이라는 걸 알았다.
리오의 아침, 다시 시작되는 리듬
마지막 날 아침, 나는 다시 코파카바나 해변으로 나갔다. 하늘은 맑았고, 바다는 유난히 푸르렀다. 파도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어제보다 한결 잔잔했다. 모래 위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리오의 사람들은 매일 이런 풍경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그들에게는 화려한 것이 없어도 충분했다. 노을, 바람, 음악, 그리고 사람.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이미 꽉 차 있었다. 돌아가는 길, 택시 창밖으로 슈가로프 마운틴(Sugarloaf Mountain)이 멀어지고 있었다. 산 아래로 펼쳐진 바다와 도시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리오, 너는 나를 춤추게 했다.” 그건 단순한 여행의 추억이 아니었다. 리오는 나에게 ‘삶을 느리게 즐기는 법’을 가르쳐 준 도시였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 리듬을 잊지 않기 위해 다시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