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의 카타니아(Catania)는 ‘불과 바다의 도시’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 북쪽에는 늘 연기를 내뿜는 에트나산이 서 있고, 남쪽에는 짙푸른 지중해가 펼쳐져 있다. 두 극단이 공존하는 곳.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이 도시의 공기에서 묘한 긴장감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꼈다. 카타니아의 거리는 오래된 돌길로 이어져 있고, 그 돌마다 시칠리아 사람들의 발자국과 숨결이 남아 있었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삶’이 늘 강렬하게 느껴졌다.

에트나산 아래, 생명력이 살아있는 도시
카타니아는 에트나산이 만든 도시다. 화산이 무너뜨리고, 다시 그 자리에 사람들이 삶을 세웠다. 그래서 이곳의 건물 대부분은 화산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검은색 벽돌로 지어진 교회와 도로는 마치 불의 흔적을 간직한 듯 강렬하다. 나는 첫날, 에트나산을 향해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이 보였고, 그 뒤로 산의 실루엣이 점점 뚜렷해졌다. 산 중턱에 오르자 바람이 달랐다. 뜨겁지만, 어딘가 맑고 깊었다. 현지 가이드가 내게 말했다. “우린 불 위에 살아요. 하지만 그게 두렵진 않아요. 불은 늘 새 생명을 주거든요.”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에트나의 화산재로 만들어진 땅은 비옥하다. 그래서 카타니아의 과일과 와인은 유난히 향이 진하다. 자연의 위험과 축복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그것이 카타니아의 본질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로 돌아올 때, 바람이 따뜻하게 불었다. 나는 그때 문득 생각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사람과 바다가 만든 일상의 풍경
카타니아의 시장, 특히 ‘라 페스케리아(La Pescheria)’는 도시의 심장 같은 곳이다. 아침 일찍 시장에 들어서면, 고기와 생선 냄새, 바다의 소금기, 사람들의 외침이 뒤섞인다. 상인들은 끊임없이 손짓하고, 서로 농담을 던지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 어부가 내게 손짓했다. “사진 찍지 말고, 이거 좀 먹어봐!” 그가 건넨 것은 갓 구운 정어리였다. 바삭한 껍질과 짭조름한 바다 향이 입안에 퍼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 맛 때문에 내가 매일 여기 와요.” 그는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카타니아의 바다 맛이야. 불과 바다가 만나야 이런 맛이 나지.” 그의 말은 단순한 농담 같았지만, 그 안엔 진심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광장에 있는 식당들이 활기를 띤다. 하얀 테이블보 위에 올려진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는 이 도시의 상징 같은 음식이다. 구운 가지, 토마토 소스, 리코타 치즈가 어우러진 단순한 요리지만, 그 안에는 시칠리아의 태양과 사람들의 손맛이 녹아 있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거리로 나오면 음악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아이들은 분수대 근처에서 웃고 있었다. 카타니아의 오후는 늘 살아 있었다.
밤이 내린 후, 불의 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
카타니아의 밤은 낮보다 더 강렬하다. 석양이 지면 검은 돌건물들이 붉은빛을 머금고, 거리는 천천히 불빛으로 물든다. 나는 두오모 광장(Duomo di Catania)에 앉아 있었다. 대성당의 앞에는 코끼리 모양의 분수가 서 있는데, 그 코끼리는 도시의 상징이다. 불을 이겨낸 힘과 인내의 상징이라고 했다. 밤바람이 살짝 불고, 광장에 앉은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그들 사이에 앉아 있으니, 낯선 내가 아닌 오래된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한 노부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에트나의 불은 무섭지 않아요. 그 불이 있어야 우리가 따뜻하거든요.” 그 말은 마치 이 도시 전체의 목소리 같았다. 광장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멀리서 에트나산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 불빛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불이 있다는 건, 삶이 계속된다는 뜻이니까. 그날 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나는 도시의 숨소리를 들었다. 바람에 스치는 야자잎,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카타니아는 그 자체로 ‘생명’이었다.
이 도시를 떠나는 날, 나는 새벽의 바다를 보았다.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천천히 떠오르고, 바다 위로 금빛이 번졌다. 그 빛이 에트나산의 검은 실루엣을 감싸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카타니아는 불과 바다, 생명과 고요함, 뜨거움과 따뜻함이 함께 존재하는 도시라는 것을. 이곳의 사람들은 불 속에서 웃고, 바다 속에서 꿈을 꾼다. 그 강인한 삶의 리듬이야말로 카타니아의 진짜 아름다움이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종종 이 도시를 떠올릴 것이다. ‘불과 바다가 만나는 곳,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도시’ — 그것이 바로 카타니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