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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베르겐(Bergen). 북유럽을 여행하면서도 사실 이 도시의 이름은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막상 발을 디딘 순간, 베르겐은 제게 아주 특별한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알록달록한 목조건물들이 항구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풍경, 습기를 머금은 공기에서 느껴지는 바다의 냄새, 그리고 잔잔한 빗소리까지. 모든 게 마치 한 편의 그림처럼 다가왔습니다.
항구에서 만난 알록달록한 목조건물들
베르겐을 처음 만난 건 브뤼겐(Bryggen) 항구였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중세 시절 한자동맹의 무역 거점이었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명소가 되었죠. 항구를 따라 줄지어 있는 붉은색, 노란색, 하얀색 목조건물들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 내리는 오후, 작은 카페에 들어가 창밖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빗방울이 항구를 적시는 소리와 함께,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이는 그 순간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낭만이었습니다. 주변에는 여행자들이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거닐고 있었고, 상점 앞에는 노르웨이 전통 기념품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습니다. 그 풍경이 베르겐만의 색깔을 완성해주었습니다.
플뢰옌 산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전경
베르겐을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 중 하나는 플뢰옌(Fløyen) 산에 올랐던 순간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오르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붉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푸른 피오르,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 산 정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베르겐이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 역사와 현재가 어우러진 거대한 무대처럼 느껴졌습니다. 현지인들은 가족 단위로 산책을 나와 있었고, 아이들은 초콜릿을 들고 뛰어다녔습니다.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저 역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피오르드 여행의 출발점, 베르겐
베르겐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단순히 도시 자체의 매력만은 아닙니다. 바로 피오르드 여행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이죠. 저는 베르겐에서 출발하는 피오르드 투어를 예약해 배를 탔습니다. 도시를 벗어나자 양옆으로 거대한 절벽이 솟아오르고, 그 사이를 따라 잔잔한 물길이 이어졌습니다. 가끔은 폭포수가 절벽 사이에서 쏟아져 내렸고, 작은 마을들이 피오르드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마치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노르웨이의 자연은 인간이 감히 꾸밀 수 없는 예술’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베르겐은 바로 그 예술의 관문이었습니다.
베르겐이 남긴 감정
베르겐에서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매일 내리는 비조차도 이 도시의 매력이었고, 흐린 하늘 속에서도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항구를 걸었습니다. 바다 냄새가 가득한 공기, 빗방울에 반짝이는 건물들, 그리고 그 속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베르겐은 화려하지도, 북적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담백한 매력 덕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베르겐은 제게 ‘조용히 스며드는 도시’였습니다. 다시 언젠가 찾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 같은 장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