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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푸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온천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단순히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오랫동안 바쁘게 살아오신 부모님께, 잠시나마 온전한 휴식과 편안함을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효도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목적지를 벳푸로 정했다. 바다와 산이 함께 있는 조용한 도시, 그리고 일본 온천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 출발 전부터 마음이 한껏 설레었다.

벳푸 효도여행

숙소 – 부모님이 먼저 웃으신 순간

벳푸 역에서 내리자마자, 온천 특유의 유황 향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한 전통 료칸이었다. 체크인 로비에서부터 고즈넉한 분위기가 흘렀고, 직원분들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이웃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방에 들어서자 부모님이 동시에 “와…” 하고 감탄을 내뱉으셨다. 넓은 다다미방, 커다란 창 너머로 펼쳐진 푸른 바다,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 마을의 풍경. 잠시 말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아버지가 “이걸 보려고 멀리까지 온 거구나” 하셨다. 그 한마디에 모든 준비의 수고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직원이 가져다 준 녹차와 전통 과자를 함께 먹었다. 부모님은 녹차 향을 천천히 음미하시며, “여긴 공기가 다르다”고 하셨다. 그 모습에 마음이 놓이면서, 오늘 밤 온천에서 더 큰 웃음을 보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식사 – 한 끼가 여행의 절반

효도여행에서 식사는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추억’이 된다. 저녁은 료칸에서 준비해주는 가이세키 요리였는데, 계절별 식재료를 활용한 코스였다. 첫 접시부터 시선이 빼앗겼다. 작은 도자기 그릇 위에 담긴 생선회, 산에서 갓 채취한 버섯, 그리고 벳푸 특산 해산물 요리. 어머니는 생선회를 한 점 드시더니 “이렇게 부드러운 회는 처음이야” 하셨고, 아버지는 따끈한 국물 요리에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벳푸의 명물 ‘지옥찜 요리’였다. 온천 증기를 이용해 해산물과 채소를 찌는 방식인데,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어 부모님 모두 연신 젓가락을 놓지 않으셨다. 식사 내내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가끔은 “다음에 또 오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한마디가 이 여행의 목적을 완벽하게 이룬 순간이었다.

온천 – 몸과 마음이 동시에 풀리는 시간

저녁 식사 후, 본격적으로 온천을 즐길 시간. 료칸에는 실내탕과 노천탕이 모두 있었는데, 부모님께는 노천탕을 추천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면 그야말로 천국이기 때문이다. 탕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머니는 “이래서 다들 일본 온천을 찾는구나” 하셨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고, 멀리서 파도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아버지는 온천물에 몸을 맡긴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이제야 내가 쉬는 것 같네”라고 하셨다. 그 말이 귓가에 오래 남았다.

온천에서 나와 몸을 말리며 부모님과 함께 마신 차가 또 하나의 작은 행복이었다. 온천 후의 차는 왜 그렇게도 달콤하게 느껴지는지,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 흘렀다.

벳푸에서 보낸 하루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표정과 말투에서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한 사람과의 순간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벳푸는 그 순간을 완벽하게 담아낸 도시였다. 다음엔 봄 벚꽃이 필 때, 다시 부모님과 이 길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