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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마시는 일본 북쪽 해안선에 자리 잡은 도시로, 바다와 산이 손을 맞잡은 듯한 풍경을 가진 곳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도야마’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겼다. 솔직히 말하면, 교토나 도쿄처럼 유명한 도시도 아니고, 꼭 가야 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곳일수록 사람의 냄새와 진짜 풍경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큰 계획 없이, 단 한 장의 기차표만 들고 도야마로 향했다.

도야마시
도야마시

바다로부터 시작된 아침, 도야만의 고요한 풍경

아침 일찍 도야마역을 나서자, 맑은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었지만, 그 안에는 짠내와 함께 이상한 포근함이 섞여 있었다.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도야만(富山湾)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점점 푸른빛이 짙어지더니, 이내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파도는 잔잔했고, 햇빛은 은빛으로 물결 위를 스쳤다. 그리고 멀리, 설산으로 둘러싸인 북알프스가 보였다. 바다와 눈 덮인 산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라니—그 순간,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바다를 바라봤다. 파도는 소리 없이 발끝을 적시고, 새들은 낮게 날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져 있던 내 귀에, 이 적막은 낯설고도 따뜻했다. 옆에서 낚시를 하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여긴 겨울이 제일 예뻐요. 산이랑 바다가 같이 보이거든.” 그 말이 이 도시의 모든 걸 설명해주는 듯했다. 도야마의 매력은 화려함이 아니라, 그 자연스러운 조화 속에 있었다.

도심 속의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한 그릇의 우오즈 스시

점심 무렵 도야마 시내로 돌아왔다. 도야마는 작지만 잘 정리된 도시였다. 트램이 천천히 도로를 따라 달리고, 카페나 상점들은 아기자기하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현지인이 추천해준 스시집 ‘우오즈 스시’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신선한 바다 냄새. 주인장이 활짝 웃으며 “처음 오셨죠?” 하고 말을 걸었다. “도야마의 겨울 스시는 최고예요. 특히 화이트새우는 꼭 드셔보세요.” 그렇게 시작된 한 끼는 정말 잊을 수 없었다.

화이트새우는 투명하게 빛나는 살결을 가지고 있었다. 입안에 넣자마자 달큰한 맛이 퍼졌고, 미묘한 단맛이 오래 남았다. 주인장은 내 표정을 보더니 웃었다. “그게 도야마 맛이에요. 바다가 주는 선물.” 그 말이 괜히 감동적으로 들렸다. 단순히 맛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정성과 자연의 시간이 담겨 있는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주인장이 덧붙였다. “여행 중이면 꼭 도야마성 공원도 가보세요. 봄에는 벚꽃이 환하고, 겨울엔 눈이 담요처럼 덮이죠.” 그 말을 듣자마자 발걸음이 자연스레 향했다.

도야마성 공원에서 마주한 오후의 고요

도야마성 공원은 도심 한가운데 있지만, 마치 다른 시간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성터를 중심으로 커다란 연못이 있고, 그 주변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나는 천천히 그 길을 걸었다. 눈이 살짝 쌓여 있었고, 연못 위에는 얇은 얼음이 반짝거렸다. 고요 속에서 들리는 건 오직 발자국 소리뿐이었다. 그 순간, 문득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도시가 사람을 이렇게 느리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공원 안에는 몇몇 노년의 부부가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추워도 좋죠, 그렇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그 한마디가 유난히 따뜻하게 들렸다. 낯선 여행지에서 나를 맞이하는 건, 결국 사람의 온기였다. 그렇게 도야마에서의 오후는 한없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해질녘, 바다로 돌아가다

해가 기울 무렵, 다시 도야만으로 향했다. 낮에 봤던 그 바다가 이번엔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늘은 분홍빛에서 주황으로, 그리고 천천히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바람이 조금 차가워졌지만, 그 공기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방파제 위에 앉아 손을 호호 불며 잠시 눈을 감았다.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멀리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어우러졌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소리들이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여행이라는 건 어쩌면 그런 것 같다. 거창한 목적지도, 화려한 일정도 필요 없다. 그저 잠시 멈춰서, 한 도시의 호흡을 따라가는 것. 도야마에서 나는 그걸 배웠다. 자연의 리듬과 사람의 온기, 그리고 느림의 시간. 그것들이 모여 도야마만의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떠나는 밤, 도야마의 불빛 속에서

기차역으로 돌아오는 길, 트램이 천천히 움직였다. 유리창 밖으로 도야마의 밤이 펼쳐졌다. 작고 단정한 가게들, 푸른빛의 거리등, 그리고 멀리 눈 덮인 산맥의 실루엣. 그 모든 게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생각했다. 도야마는 ‘조용한 도시’가 아니라,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도시’라고. 바람이 불어도, 눈이 내려도, 그 고요함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도야마다운 매력이 아닐까.

다음 날 아침, 기차가 출발할 때 창밖으로 다시 바다가 스쳤다. 나는 속으로 작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도야마.” 그 한마디에 이 여행의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이번에는 봄의 도야마를 만나고 싶다. 벚꽃과 바다, 그리고 산이 함께 숨 쉬는 그 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