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니가타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눈과 쌀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일본 최고의 쌀은 니가타에서 난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어본 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직접 발을 들이고 보니, 니가타는 단순히 쌀로 유명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바다와 산, 그리고 도시의 일상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저는 ‘일본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니가타
바다와 마주한 도시, 니가타의 첫인상
니가타역을 나서자마자 느껴지는 공기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 속에서 바다 냄새가 은근히 묻어났거든요. 도보로 조금만 걸으면 도착하는 바다, 그 너머로 펼쳐진 일본해는 탁 트여 있었습니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어딘가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바닷바람에 머리가 흩날릴 때, 저는 문득 ‘이곳 사람들의 삶은 바다와 함께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가타의 해안 산책로를 걷는 동안, 조깅하는 사람, 낚싯대를 드리운 노인,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젊은 커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관광지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연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풍경이었죠. 그래서인지 여행자로서 저도 그 속에 쉽게 녹아들 수 있었습니다.
니가타의 맛, 쌀과 사케 그리고 신선한 바다
니가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쌀과 사케입니다. 현지인에게 추천받아 들어간 작은 이자카야에서는 ‘고시히카리’ 쌀로 지은 밥과 신선한 생선이 차려졌습니다. 쌀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윤기가 돌았고, 입에 넣는 순간 고소한 단맛이 퍼졌습니다. 일본 어디서나 쌀밥을 먹을 수 있지만, 니가타의 밥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그리고 사케. 투명한 잔에 담긴 니가타산 사케를 마셨을 때, 목을 타고 흐르는 부드러움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알코올의 자극보다는 은은한 단맛과 깊은 풍미가 느껴졌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현지 아저씨는 “니가타 사람은 사케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라며 웃었는데, 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더군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바다에서 바로 잡아 올린 해산물이었습니다. 특히 겨울철 대게 요리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커다란 게를 통째로 쪄내어 손으로 직접 발라 먹을 때, 달고 짭조름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바다의 선물’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죠.
눈의 도시가 전해 준 고요함
제가 니가타를 찾았을 때는 초겨울이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폭설은 아니었지만, 거리에는 하얀 눈이 얇게 쌓여 있었습니다. 눈 덮인 길을 걸으며 듣는 발자국 소리는 도시의 소음을 잊게 해주는 리듬 같았습니다. 니가타는 일본에서도 눈이 많이 오는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겨울이면 근처 스키 리조트가 열리는데, 도심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만 나가도 끝없이 펼쳐진 설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흰 눈 속에 묻힌 작은 마을들은 마치 그림 속 풍경 같았고,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갔을 때 느껴지는 대조적인 기분은 잊기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눈발이 흩날리는 노천탕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순간, ‘아, 이게 니가타가 주는 겨울의 선물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가타에서 느낀 여유와 울림
니가타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교토처럼 전통 건축이 즐비하지도, 도쿄처럼 반짝이는 빌딩이 늘어서 있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바다와 산, 쌀과 사케, 그리고 눈. 그 단순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조화가 도시를 특별하게 했습니다. 여행을 하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찾는 ‘여행의 매력’이 꼭 눈에 띄는 관광지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요. 니가타에서의 며칠은 제가 조금 더 느긋해지고, 더 단순하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눈 덮인 논밭을 보며 저는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언젠가 또다시 이곳을 찾아와, 겨울의 눈과 여름의 푸른 들판을 모두 만나고 싶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