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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해안 도시 중에서도 페스카라(Pescara)는 조금 다르다. 유명 관광지처럼 북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조용해서 지루하지도 않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사람과 바다, 그리고 바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처음 그 이름을 지도에서 발견했을 때만 해도 단지 하룻밤 묵는 여정의 중간 지점일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서는, 마음속 어딘가가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이 도시는 ‘그냥 흘러가도 괜찮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첫인상, 아드리아해의 바람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에 서자마자, 얼굴로 부드러운 바람이 스쳤다. 그 바람엔 바다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조금 걸어가니 눈앞이 확 트였다. 끝없이 펼쳐진 아드리아해가 눈앞에 있었다. 파도는 거칠지 않고 일정한 리듬으로 해변을 두드렸고, 그 소리가 도시의 심장 박동처럼 들렸다. 해변에는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또 어떤 연인은 파라솔 아래서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굳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완성되는 도시 — 그게 페스카라였다.
도시의 리듬, 느리게 걷는 하루
페스카라의 중심가는 해변과 평행하게 이어져 있다. 바다와 도시가 나란히 걷는 구조다. 나는 아침에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해안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바다와 가까운 쪽에는 수영복 차림의 아이들이 뛰놀고, 반대편 카페 거리에는 노년의 부부들이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여유’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여유란 시간을 많이 갖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머무는 거라는 걸. 이곳 사람들은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점심 무렵, 바닷가 근처의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주방에서는 올리브유가 튀는 소리가 들렸고, 창가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흰 커튼이 걸려 있었다. 나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추천 요리를 주문했다. 잠시 후, 접시 위에는 조개와 토마토가 들어간 해산물 파스타가 올려졌다. 소스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한입 먹자마자 그 신선함에 웃음이 나왔다. 음식은 단순했지만, 재료의 정직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의 맛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 그리고 저녁의 페스카라
오후에는 해변으로 다시 나갔다. 햇살은 부드러워졌고, 모래 위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었고, 파도가 발목을 살짝 적셨다. 그 순간 세상 모든 소음이 사라진 것 같았다. 오직 파도 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만이 남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해질 무렵의 따뜻한 색감이 뒤섞이자 마음이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바다는 하루 종일 같은 리듬으로 움직였지만, 그 안에는 수천 가지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아마 그것이 내가 이곳에 끌린 이유일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자 해안도로의 카페들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 테라스에는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고, 거리에서는 기타를 든 버스커가 노래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거칠었지만, 그만큼 진심이 느껴졌다. 해변의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그 노래 덕분에 이상하게 따뜻했다.
사람 냄새 나는 도시, 그리고 떠남의 여운
페스카라는 화려하지 않다. 볼거리가 넘치는 관광지도 아니다. 하지만 그 대신, 사람의 일상이 살아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해변을 청소하는 노인, 아침마다 자전거로 출근하는 청년, 오후마다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줄을 서는 가족들. 그들의 하루가 이 도시의 풍경을 완성한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그런 장면들에 마음이 더 가게 된다. 유명한 건물보다 평범한 거리의 색감, 누군가의 웃음, 커피 한 잔의 온도 같은 것들 말이다. 페스카라는 그런 ‘작은 온기’를 가득 품은 도시였다. 떠나는 날 아침, 숙소 발코니에서 마지막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햇살이 수면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그 빛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이 도시가 가진 태도 같았다. 서두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태도. 나는 그 모습을 마음에 새기며 조용히 속삭였다. “Arrivederci, Pescara.” —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무료 이미지 참고: Pixab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