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비스크리(Viscri)는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브라쇼브(Brașov) 인근에 위치한 작은 전통 마을로, 인구 500명도 되지 않는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교회 요새(Fortified Church)와 함께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보존 활동을 펼친 마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돌길, 말이 끄는 마차, 파란색 회벽의 농가들이 어우러져 중세 유럽의 시골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루마니아

비스크리 교회 요새: 13세기부터 이어진 유네스코 유산

비스크리를 대표하는 상징은 바로 비스크리 교회 요새(Viscri Fortified Church)입니다. 이 고딕 양식의 루터교 요새 교회는 13세기에 건축되어, 수세기 동안 이 지역의 주민들이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방어하고 예배를 드리던 중심지였습니다. 교회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내부에는 중세 시기의 방어용 탑, 창고, 거주 공간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1999년, 이 교회는 루마니아 내 7개의 대표적인 ‘요새화 교회’ 중 하나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단순한 종교 공간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자 역사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교회 내부에는 고전 루터교 양식의 제단, 수공예 가구, 전통 도자기 등이 보존되어 있고, 전망대에 오르면 비스크리 마을 전체와 끝없이 펼쳐진 들판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파란 회벽의 전통 농가와 중세 유럽의 일상

비스크리의 또 다른 매력은 마을 전체에 흩어져 있는 전통 농가와 돌길입니다. 대부분의 건축물은 18~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특유의 파란색 회벽, 기와지붕, 나무 셔터 등이 특징입니다. 이 농가들은 현재도 주민들의 실제 거주 공간이지만, 일부는 게스트하우스나 소규모 박물관, 수공예 공방으로 운영되어 관광객에게 전통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마을에서는 말이 끄는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되며, 농부들은 자급자족하며 살아갑니다. 빵을 직접 굽고, 염소젖으로 치즈를 만들며, 천연 염색 옷을 제작하는 등의 슬로우 라이프는 전 세계 도시인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마을 여성들이 운영하는 수공예 양말, 수세미, 러그 등을 판매하는 시장은 작지만 따뜻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건물 하나하나가 그림엽서 같으며, 전기가 부족한 몇몇 구역에서는 석유 램프와 벽난로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어 진정한 ‘시간 여행’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찰스 3세 국왕이 사랑한 마을

비스크리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데는 영국 찰스 3세 국왕(당시 왕세자)의 방문과 보호 활동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1998년 처음 비스크리를 방문한 뒤 그 아름다움과 전통적 삶에 깊이 감동하여, 한 농가를 구입해 환경 친화적인 리노베이션과 보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자주 머물며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 전통 건축 보존, 생물 다양성 보호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해왔습니다. 찰스 왕의 개입은 마을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을 뿐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와 문화 보존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현재 그의 재단은 루마니아 내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보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숙소로 사용된 집은 현재 게스트하우스 및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전통 가구와 생활도구, 찰스 왕의 방문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입니다. 이는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지속가능한 문화 유산 보존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비스크리(Viscri)는 단순히 아름다운 마을이 아닌, 시간과 전통, 문화와 지속가능성이 어우러진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 대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깊이 있는 여정을 원한다면, 루마니아의 비스크리는 꼭 들러야 할 진정한 ‘유럽의 마지막 시골’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