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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토리에 처음 갔던 날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일본에서 이런 풍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불어오는 바람이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바다의 짠내와 모래 냄새가 섞여 있었고,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빛 사구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정말 여기가 일본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죠.

돗토리 사구, 발자국이 그리는 이야기

돗토리 사구는 일본 최대 규모의 모래 언덕입니다. 사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발이 폭신하게 빠져들고, 걸을 때마다 바람이 모래를 살짝 흩날립니다. 여름 햇살 아래에서는 모래가 뜨겁게 달궈져서 신발 안까지 열기가 전해졌고, 겨울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 얼굴이 얼얼할 정도였지만, 그 차가움마저도 이곳의 풍경과 잘 어울렸습니다. 사구 꼭대기에 올라서 바다를 바라보면, 파도 소리가 바람을 타고 울려옵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 세상에 저와 바다, 그리고 모래밖에 없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구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기도 하고, 낙타를 타고 모래 위를 걷기도 합니다. 저는 그냥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천천히 걸었는데, 발바닥에 전해지는 그 감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바람이 만든 부드러운 곡선과 모래결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데, 마치 자연이 매순간 그림을 그리고 지우는 것 같았습니다.

우라도메 해안, 파도와 바위가 만든 비밀정원

돗토리 사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우라도메 해안이 있습니다. 이곳은 투명한 바닷물과 기묘한 바위 지형이 어우러져 마치 일본판 지중해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면, 바위 사이로 작은 모래사장이 숨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그 중 한 곳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물빛이 너무 맑아서 발을 담그고 싶어졌습니다. 여름에 갔을 때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고, 겨울에는 적막한 바다와 회색 하늘이 오히려 묘한 평화를 주었습니다.

배를 타고 해안을 따라가면 바다 동굴과 기암괴석들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파도가 바위를 때릴 때 나는 ‘쿵’ 하는 울림은 가슴속까지 전해졌고, 그 소리를 듣는 동안에는 모든 생각이 멈췄습니다. 자연이 만든 예술 작품 속에 제가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었죠.

돗토리의 맛, 현지에서만 즐길 수 있는 행복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음식입니다. 돗토리는 특히 게로 유명한데, 겨울철에 먹는 마츠바가니는 살이 달고 부드럽기로 유명합니다. 저는 현지 식당에서 찜으로 나온 마츠바가니를 처음 먹었는데, 게 껍질을 열자마자 퍼지는 달큰한 향과 김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살을 발라 먹을 때의 그 촉촉함과 단맛은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맛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돗토리 배(니시노시마 배)와 돗토리 와규도 꼭 먹어봐야 합니다. 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노점에서 갓 구운 해산물 꼬치를 팔고 있는데, 저는 뜨거운 조개구이를 손에 들고 해안을 걸었습니다. 그 순간의 풍경과 맛이 합쳐져,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느낄 수 없는 호사를 누린 기분이었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사구의 모래 위에 남겨둔 제 발자국이 바람에 지워지는 걸 보며 생각했습니다. 결국 여행도 그렇습니다. 순간은 사라지지만, 그 시간 동안 느낀 감정과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 거죠. 돗토리는 제게 그런 추억을 선물해준 곳입니다. 언젠가 다시, 다른 계절의 빛과 바람 속에서 이곳을 걸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