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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는 오사카와 고베 사이, 바다와 도시의 경계에 살짝 걸쳐 있는 조용한 항구도시예요. 처음엔 단순히 “고베 근처의 소도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발을 디뎌보니 이곳은 훨씬 더 다정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관광명소로서의 화려함보다는, 일상의 여백을 느끼게 해주는 도시. 그래서일까요, 아카시를 떠올리면 언제나 ‘쉼표’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바다와 다리가 만든 도시의 풍경
아카시를 대표하는 건 단연 아카시해협대교입니다. 고베와 아와지섬을 잇는 이 거대한 다리는, 밤이면 별처럼 빛나는 조명으로 바다 위를 수놓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순간은 낮이었어요. 맑은 날, 다리 아래로 투명하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걷던 그 시간. 파도가 잔잔하게 부서지고, 해변의 돌 위에는 갈매기들이 무심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은 바람이 조금 거칠었는데, 덕분에 바다 냄새가 훨씬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리 아래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 먹으며, 저 멀리 보이는 아와지섬을 바라봤죠. 오사카만을 가로지르는 배들이 천천히 지나가고, 파도는 그 흔적을 따라 잔물결을 남겼습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세상의 속도가 잠시 느려진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관광지의 소란함도 없고, 인파에 떠밀릴 일도 없는 곳. 대신 바람, 햇살, 그리고 바다의 소리만이 존재하는 도시. 그 단순한 조합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하고 말해주는 듯했죠.
시장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
아카시의 또 다른 매력은 아카시 어시장이에요. 좁은 골목마다 생선의 비린내와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뒤섞여 있습니다. “이쪽이 더 신선해요!”라고 외치는 상인들의 목소리, 그 앞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아주머니들. 시장의 리듬은 활기차지만, 어딘가 정겹고 인간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현지인이 추천해준 아카시야키 가게에 들렀습니다. 타코야키처럼 보이지만, 더 부드럽고 계란 향이 진한 음식이에요. 따끈한 국물에 하나를 담가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는 식감이 정말 인상적이었죠. 가게 주인은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할아버지였는데, 제가 여행자라는 걸 알아채고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이 마을은 조용하지만, 바다는 늘 살아 있어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사람 마음도 다시 움직이지요.”
그 말이 참 오래 남았습니다. 아카시는 그야말로 ‘움직이지 않는 도시 같지만, 마음은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삶의 속도를 잠시 멈추게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나아갈 힘을 주는 그런 도시 말이에요.
바다와 도시의 경계에서 느낀 여백
해질 무렵, 다시 바다 쪽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다리 위에는 자동차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어요. 그 빛이 바다에 반사되며, 마치 수많은 별이 물 위를 떠다니는 듯 보였죠. 잠시 멈춰서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마음 한가운데에도 작은 불빛이 켜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시의 중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렇게 고요하고 따뜻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더 크고, 더 멋진 곳을 찾아 떠나지만, 진짜 위로는 이렇게 작고 조용한 곳에서 오는 것 같아요. 아카시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온기가 섞여 있었습니다.
돌아가는 길, 역 앞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창가 자리에 앉으니 아카시해협대교의 불빛이 창문 너머로 반짝였어요. 커피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대단한 사건이 없었음에도, 기억에 오래 남을 풍경과 온기가 있었으니까요.
아카시는 그랬습니다. 크지 않지만, 마음을 채워주는 도시. 관광명소보다, 사람의 미소와 바다의 냄새가 더 강하게 남는 곳. 이 도시를 떠난 뒤에도 문득 그 바람과 파도소리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아카시에서 보낸 하루는 분명 제 인생의 조용한 쉼표 하나로 남을 거예요.
무료 이미지 참고: https://pixabay.com/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