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마쓰야마성
마쓰야마성

시코쿠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가고 싶었던 도시가 바로 마쓰야마시였습니다. 일본 에히메현의 중심도시이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인 도고온천과 문학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곳. 단순히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라, 도시의 공기와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발을 딛자, 마쓰야마는 제 상상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서정적인 도시였습니다.

 

마쓰야마성, 언덕 위에서 만난 시간의 흐름

마쓰야마 여행의 시작은 당연히 마쓰야마성이었습니다. 언덕 위에 자리한 성은 멀리서 봐도 존재감이 대단했습니다.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펼쳐지는 풍경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시내 건물들과 푸른 숲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었죠. 성에 도착해 돌계단을 오르며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수백 년 전 이 길을 걸었을 무사들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천수각에 올라서니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시코쿠 바다와 도시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 순간,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성 안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었습니다. 성을 자원봉사로 안내하고 계셨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열심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말이 완벽히 통하지 않아도, 그 따뜻한 미소와 진심 어린 태도 덕분에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마쓰야마성이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고온천, 몸과 마음을 녹여내는 시간

마쓰야마에 왔다면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이 도고온천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문호 나쓰메 소세키도 머물렀던 곳이죠. 저는 저녁 무렵,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분으로 도고온천 본관을 찾았습니다. 전통 목조건물이 주는 아늑한 분위기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오래된 소설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했습니다.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그자, 하루 종일 걸으며 쌓였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불빛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온천수의 온기와 함께 어우러져, 마음마저 편안해졌습니다. 온천에서 만난 현지인은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자, 웃으며 “도고온천은 일본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곳”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이 괜히 마음을 울렸습니다. 제가 지금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단순한 여행 경험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기억의 한 부분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참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문학의 도시 마쓰야마, 나쓰메 소세키와 하이쿠의 향기

마쓰야마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문학의 도시’라는 정체성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이곳이고, 하이쿠의 대가 마사오카 시키가 태어난 도시이기도 하죠. 도고온천 앞에는 ‘보짱 열차’라고 불리는 작은 기차가 다니는데, 바로 소세키의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을 따서 만든 열차입니다. 저는 일부러 이 열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달리는 오래된 열차는, 현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골목과 상점들을 보며, ‘이 도시 사람들의 삶은 참 여유롭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또한 마쓰야마 곳곳에는 하이쿠 시가 적힌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짧은 시 한 줄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더군요. 마쓰야마에서는 문학이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의 삶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쓰야마가 준 여운

마쓰야마는 저에게 ‘따뜻하다’는 단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웅장한 성에서 느낀 자부심, 도고온천에서 마주한 편안함, 그리고 문학적 향기가 스며든 일상까지. 이 도시의 모든 순간은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여운을 남겼습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건, 이곳 사람들의 친절함이었습니다.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다가와서 알려주던 노부부, 식당에서 제가 메뉴를 잘 못 읽자 직접 추천해주던 주인아주머니. 그들의 작은 배려가 모여 마쓰야마라는 도시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마쓰야마를 떠나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은 결국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구나.’ 화려한 건축물이나 유명한 명소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온기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습니다. 마쓰야마는 그런 의미에서 제게 아주 특별한 도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