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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하루 산책기
가마쿠라 하루 산책기

가마쿠라는 도쿄에서 전철로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바닷가 도시지만, 그 분위기는 마치 시간 여행을 온 것처럼 고즈넉합니다. 전차 창밖으로 스쳐가는 파도와 낡은 집들, 그리고 바다 냄새가 섞인 공기를 맡으면 마음이 절로 풀어집니다. 저는 가마쿠라를 몇 번이나 찾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줘서 늘 새롭게 느껴집니다.

 

가마쿠라 대불, 묵직한 평화의 시선

가마쿠라를 처음 찾는다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고토쿠인(高徳院)의 대불입니다. 입구를 지나며 점점 커지는 대불의 실루엣은 멀리서도 위엄이 느껴집니다. 높이 11m가 넘는 청동 불상은 700년 넘는 세월을 이 자리에 서 있었죠. 대불 앞에 서면 묘한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그 거대한 시선이 모든 소음을 삼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는 여름에 갔을 땐 뜨겁게 달궈진 청동 표면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고, 겨울에 갔을 땐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 푸른빛이 더욱 깊어 보였습니다. 대불 내부에 들어가면 금속 냄새와 오래된 공기가 느껴지는데,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한순간 이어지는 듯한 묘한 감정이 듭니다.

하세데라, 꽃과 풍경이 어우러진 언덕 절

대불에서 조금만 걸으면 하세데라(長谷寺)가 나옵니다. 이곳은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어 ‘꽃의 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제가 봄에 갔을 땐 경내 가득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여름에는 푸른 수국이 산책길을 장식했습니다. 특히 수국 시즌에는 경내의 작은 길마다 빛깔이 다른 수국이 피어 있어, 사진을 찍는 손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하세데라의 하이라이트는 절 뒤편의 전망대입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가마쿠라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해질 무렵에는 바다 위로 주황빛이 번지면서 도시 전체가 황금빛에 잠기죠. 그 순간을 바라보고 있으면,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세데라에는 ‘지조보살’이라고 불리는 작은 돌상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아이들을 위한 기원과 위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앞에 서면 그냥 웃고 떠들던 마음이 조용해지고, 잠시 손을 모으게 됩니다.

고마치도리, 입과 눈이 즐거운 골목

가마쿠라역에서 시작되는 고마치도리(小町通り)는 여행의 마무리를 하기 좋은 곳입니다. 양옆으로 늘어선 상점과 카페, 먹거리 가게들이 여행객들을 유혹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마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골목을 거닐었는데, 달콤하고 쌉싸래한 맛이 바닷바람과 잘 어울렸습니다.

작은 공방에 들어가면 수제 도자기와 목공예품을 구경할 수 있고, 오래된 찻집에서는 다다미 방에 앉아 말차와 화과자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비 오는 날의 고마치도리는 정말 운치가 있습니다. 젖은 돌길 위에 가게 불빛이 번지고,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 한 장면 같았습니다.

가마쿠라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머무르는 시간 동안 사람을 조용히 감싸주는 도시입니다. 대불의 묵직한 시선, 하세데라의 계절 꽃향기, 고마치도리의 활기까지.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가마쿠라는 매번 다른 색을 보여줍니다. 저는 또다시 이곳을 찾게 될 거고, 아마도 그때도 지금처럼, 느린 걸음을 즐기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