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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규슈 여행을 준비하면서 미야자키는 제 우선순위에 없었습니다. 후쿠오카나 벳푸, 나가사키처럼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이미지가 선명한 도시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발을 들이고 나니, 미야자키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남국의 바람’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따뜻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의 소박한 친절이 도시 전체에 퍼져 있었죠. 일본답기도 하지만 어딘가 이국적인 느낌이 함께 묻어났습니다.
남국의 바다와 하늘, 미야자키의 첫인상
제가 처음 미야자키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파란 하늘과 더 파란 바다였습니다. 다른 규슈 도시들도 바다를 끼고 있지만, 미야자키의 바다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후쿠오카의 항구가 분주한 생활의 바다라면, 미야자키의 바다는 여유와 쉼의 바다였습니다. 파도 소리는 거칠지 않고 잔잔했으며,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야자수들이 이곳이 일본인지 하와이인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였죠. 아오시마 신사를 찾았을 때, 바위 위로 펼쳐진 ‘악마의 세탁판’이라 불리는 지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묘하게 반복된 암석의 줄무늬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는데, 자연이 그려낸 이 무늬 앞에 서 있으니 세상에서 제가 아주 작은 존재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바람은 따뜻했고 하늘은 너무나 푸르러서, 그저 서 있기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신화와 전설이 숨 쉬는 도시
미야자키는 일본 신화의 고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다카치호 협곡에 갔을 때 그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깊은 계곡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 절벽 위에 울창하게 드리운 숲, 그리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협곡을 따라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 저는 이곳에서 일본 신들이 강림했다는 전설이 괜히 생긴 게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다카치호 신사에서 본 밤의 가구라 무용 공연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신화 속 장면을 전통 춤으로 재현하는데, 관광객들이 많음에도 분위기는 경건하고 묘하게 따뜻했습니다. 저는 언어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몸짓과 표정 속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가사키가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도시라면, 미야자키는 ‘신화의 숨결’을 간직한 도시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람과 일상이 보여준 미야자키의 매력
여행을 하다 보면 결국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미야자키에서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주인 할머니가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자 서툰 한국어로 “맛있어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할머니는 더 큰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 순간이 참 따뜻했습니다. 관광객을 단순한 손님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오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미야자키의 시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신선한 망고를 파는 상인이, 그냥 지나가려는 저를 붙잡고 “한 조각 먹어봐요”라며 건네주셨습니다. 그 달콤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단순히 과일의 맛 때문만이 아니라, 그 따뜻한 마음이 함께 배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순간들이 모여서, 미야자키는 저에게 ‘사람이 만든 여행지’라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미야자키에서 배운 여행의 의미
솔직히 미야자키는 화려하거나 유명한 관광지가 넘쳐나는 도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대신 자연과 신화,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이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낸 ‘조용한 매력’이 있습니다. 저는 그 고요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후쿠오카에서의 빠른 템포, 나가사키에서의 역사적 울림, 벳푸에서의 활기찬 온천이 각자 다른 색을 가졌다면, 미야자키는 ‘쉼’이라는 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다 앞에 서서 한참 동안 파도를 바라보던 순간, 다카치호의 신화를 따라가며 상상에 잠겼던 순간, 시장에서 사람들의 친절에 미소 지었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미야자키를 제 마음속 특별한 여행지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지치고 복잡한 마음을 안고 다시 규슈를 찾게 된다면, 저는 주저 없이 미야자키로 갈 것이라고. 그곳에서 만난 햇살과 바람,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이, 다시 한번 제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