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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서부를 여행하다 보면 대부분은 시카고나 미네아폴리스를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시카고에서 북쪽으로 차로 두 시간 정도만 달리면, 전혀 다른 매력을 품은 도시 밀워키에 닿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맥주 도시’라는 이미지 말고는 아는 게 별로 없었는데, 실제로 와보니 단순히 맥주 공장만 있는 곳이 아니더군요. 호수와 맞닿은 도시 풍경, 공업 도시에서 문화 도시로 변신한 흐름, 그리고 사람들의 따뜻한 일상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 바로 밀워키였습니다.

밀워키
밀워키

밀워키의 상징, 밀러 맥주와 브루어스

밀워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맥주입니다. 이곳은 ‘맥주의 도시’라는 별명처럼 역사적으로 맥주 산업이 번성했던 곳입니다. 저는 직접 밀러 맥주 공장 투어에 참여했는데, 커다란 양조 탱크를 눈앞에서 보니 ‘아, 이 도시의 정체성이 여기에 있구나’ 싶었습니다. 투어 마지막에는 신선한 맥주를 맛볼 기회가 주어졌는데, 시원하게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여행의 피로가 싹 풀리는 듯했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건 메이저리그 팀 ‘밀워키 브루어스’의 홈구장,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였습니다. 경기가 없는 날이라 야구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팬샵에 들어가 유니폼과 기념품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브루어스’라는 팀명조차도 맥주와 관련이 있다는 게 이 도시를 잘 보여주는 상징 같았습니다.

미시간 호수와 함께하는 도시

밀워키의 또 다른 매력은 호수입니다. 미시간 호수는 바다라고 해도 믿을 만큼 넓은데, 그 호숫가에 서면 마치 바닷바람을 맞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저는 아침 일찍 호수변 산책로를 걸었는데, 해가 떠오르며 호수 위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순간은 정말 잊지 못할 장면이었습니다. 밀워키 아트 뮤지엄은 호수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데, 건물 자체가 마치 새가 날개를 펴는 듯한 독특한 디자인이어서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전시도 훌륭했지만, 건물 밖에서 바람을 맞으며 건축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여행 중엔 때때로 유명한 전시물보다, 그 공간이 가진 공기와 분위기가 더 마음에 오래 남는 것 같아요.

공업 도시에서 문화 도시로

밀워키는 한때 공업 도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독일과 폴란드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많았고, 그들의 손으로 맥주와 제조업이 크게 발전했죠. 하지만 최근에는 문화와 예술을 품은 도시로 변신하고 있었습니다. 다운타운을 걸으면 오래된 건물과 현대적인 카페, 예술적인 그래피티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특히 ‘할리 데이비슨 박물관’은 밀워키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줍니다. 세계적인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 데이비슨의 본고장이 바로 이곳이거든요. 박물관 안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바이크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실제 라이더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저도 잠시나마 도로 위를 달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밀워키에서 만난 사람들

밀워키에서 인상 깊었던 건 장소뿐 아니라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대도시와는 달리 이곳 사람들은 더 여유롭고 따뜻했습니다. 호수 옆 벤치에서 아침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산책하던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여기 처음 왔냐”고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꼭 가봐야 할 곳을 추천해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레이크프런트 브루어리’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조언 덕분에 소규모 양조장에서 맥주를 즐기며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지에서 현지인의 작은 친절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그 따뜻한 미소와 대화 덕분에 밀워키가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살아 숨 쉬는 도시라는 걸 더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밀워키가 남긴 여운

밀워키는 분명 화려한 대도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대신 도시의 고유한 매력과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맥주와 야구, 미시간 호수의 풍경,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잇는 다양한 공간들.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 도시가 제게 준 인상은 깊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카고로 향하는 차 안에서 생각했습니다. ‘밀워키는 조용히 다가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도시구나.’ 그래서 언젠가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이번엔 더 오래 머물며, 현지인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고 싶습니다. 여행자의 눈이 아니라 생활자의 눈으로 바라본 밀워키는 또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