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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타. 일본 동북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이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찾아가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죠. 그래서 저는 더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 도시는 어떤 풍경을 품고 있을까? 그 호기심 하나로 떠난 아키타 여행은, 제게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곳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사람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진짜 여행의 도시였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 아키타, 하얀 고요 속을 걷다
제가 처음 아키타를 찾았던 건 겨울이었습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고, 거리는 고요하게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다른 도시에서 흔히 듣는 자동차 소리나 사람들의 부산스러움 대신, 푹신한 눈을 밟을 때 나는 뽀드득거리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본 건, 옛 일본식 가옥들이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한 분위기.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저를 보며 “춥지?” 하고 웃으며 말을 걸어주셨는데, 그 짧은 대화 속에서도 아키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답게 겨울은 조금 불편하지만, 그 대신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고요함의 호사’를 선물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아키타의 맛, 그리고 따뜻함
아키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음식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바로 ‘기리탄포(きりたんぽ)’라는 전통 요리입니다. 잘 지은 아키타 쌀을 빻아 대나무 꼬치에 붙여 구운 뒤, 닭고기와 채소, 된장 국물에 넣어 먹는 요리인데, 눈 내리는 날 뜨끈한 기리탄포 나베를 한입 먹는 순간, 속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추운 겨울을 견디는 아키타 사람들의 지혜와 마음이 담긴 음식 같았어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아키타 사케였습니다. 맑고 차가운 물, 좋은 쌀에서 나온 술은 정말 부드러웠습니다. 작은 이자카야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건배를 하며 마신 사케는, 아키타의 추운 겨울 밤을 따뜻하게 녹여주었습니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건배는, 국경이나 언어를 넘어서 함께 웃게 만드는 순간을 만들어주죠.
아키타의 여름, 네부리나가시와 칸토 마츠리
아키타는 계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겨울이 고요하다면, 여름은 열정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8월에 열리는 ‘칸토 마츠리(竿燈まつり)’는 아키타를 대표하는 여름 축제인데, 저는 운 좋게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수십 개의 초롱이 매달린 대나무 장대를 어깨와 이마, 허리에 얹어 균형을 잡는 퍼포먼스는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불빛이 여름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는데,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도시 전체가 축제의 열기에 휩싸였습니다. 또, 아키타 남쪽에서는 ‘네부리나가시’라는 전통 행사가 이어집니다. 등불을 띄워 악귀를 몰아내고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인데, 강 위로 흘러가는 등불의 행렬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제 마음속 근심도 함께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아키타는 단순히 조용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계절마다 전혀 다른 에너지를 품고 있는 곳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아키타가 남긴 울림
아키타 여행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눈 덮인 골목에서 느낀 고요, 따뜻한 기리탄포와 사케의 온기, 그리고 여름 밤 축제의 열정. 이 모든 게 모여 아키타라는 도시의 얼굴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끝없이 펼쳐진 논과 산, 그리고 작은 마을들이 이어졌습니다. 도시의 화려함에 익숙했던 제게 아키타는 마치 ‘여행은 반드시 특별한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준 곳이었습니다. 진짜 여행은 그저 그곳의 공기를 마시고, 사람들과 웃으며, 그 땅의 음식을 맛보는 순간에 있다는 걸 알게 해준 도시. 아키타는 그렇게 제 마음속에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여운을 남겼습니다.